능소화는 지금- 황영숙
- 기사입력 : 2020-07-16 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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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잘릴지언정
무릎 꿇진 않았다
등산길 한가운데 굴삭기와 맞서서
전봇대 부둥켜안고
그녀는 농성 중
비릿한 흔들림도 한 때 누린 호사도
하늘에 쏟아 놓고 다홍 순결 쏟아 놓고
박제된 육근六根을 모아
허공을 잡고 있다
*육근(六根)= 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인식기관으로 눈, 코, 혀, 귀, 뜻, 몸을 뜻한다
☞ 능소화가 시인보다 더 서정적 즐거움으로 노래하는 칠월입니다.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점점 장마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잦은 비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고향집 기와 흙담장 아래 통꽃으로 떨어진 꽃잎무더기도 절창이라 작가들의 시선을 사로잡곤 합니다.
그래요.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그곳에 절창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잘릴지언정/ 무릎 꿇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쉽게 무릎 꿇지 않겠다는 각오로 거대한 굴삭기 앞에서 그녀는 농성 중입니다. 전봇대를 칭칭 감고 올라간 그녀가 수많은 확성기를 켜놓고 농성 중입니다. ‘비릿한 흔들림도 한 때 누린 호사도/ 하늘에 쏟아 놓고 다홍 순결 쏟아 놓고/ 박제된 육근을 모아/ 허공을’ 부여잡고 농성 중입니다. 그녀의 절규가 하늘에 가 닿을 때까지 거센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다홍빛 절규가 이렇게도 아름다운 절창으로 비춰질 줄 미처 몰랐습니다. 능소화는 지금…. 임성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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