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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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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돈의 무게, 신용의 무게- 왕혜경(전 김해 월산중 교장)

  • 기사입력 : 2020-07-21 20: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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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회는 신용사회다. 카드와 휴대폰만 들고 다니면 모든 게 다 해결이 된다. 하지만 나는 옛날사람이라 현금이 없으면 불안하다. 기본 10만원 정도는 항상 갖고 다닌다.

    그런데 신용사회의 첨병(尖兵)인 사람들이 가끔씩 현금을 빌려달라고 할 때가 있다. 큰돈도 아니고 일 이만 원 정도를 빌려달라고 할 땐 빌려줄 수도, 안 빌려줄 수도 없어 정말 난감하다. 10만원 단위의 돈이면 갚지 않았을 때 재촉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일이만원 정도를 빌려가서 갚지 않을 땐 재촉하기도 민망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안 갚고 싶어서 안 갚는 게 아니라 돈 액수가 적다보니 빌려간 사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쉬워서다. 그래서 그런 돈은 가능하면 빌리지 않는 게 좋고, 빌릴 상황이 생기더라도 큰돈을 빌릴 때보다 더 신경 써서 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일본 작가 오가와 이토의 소설 ‘반짝반짝 공화국’에도 그런 얘기가 나온다. 두 사람이 같이 여행을 가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왕복 차표까지 같이 샀다. 근데 그 사람이 은행가서 주겠다 하고선 잊고 차표 값을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쩨쩨한 사람이라 생각할까봐 말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빌려간 사람이 병으로 입원하는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혹시나 그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죽음을 순수하게 슬퍼하지 못하고 계속 빌려준 돈만 생각하게 될까봐 돈을 빌려준 사람이 대필하는 사람에게 부탁해 입원한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내용이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엔 편지를 대필해 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빌려준 사람은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흐름은 중요하다. 그 흐름을 따라 서로간의 신뢰가 쌓이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돈이 적다고 해서 신용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은 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가 달려 있다고 한다면 적은 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일도 성실하게 해내기 때문이다.

    왕혜경(전 김해 월산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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