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촉석루]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정삼조(시인)

  • 기사입력 : 2020-07-22 20:27:41
  •   

  • 소시적 마산 출신 김용호 시인의 시 ‘눈 오는 밤에’를 읽고 그 시 세계에 하염없이 끌려 들어간 적이 있었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이야기에/ 어느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 토실 익겠다’로 시작하고 마치는 시가 얼마나 정답게 다가왔던가. 또 같은 시인의 시 ‘오월의 유혹’은 어땠던가.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하는 첫 구절에서부터 마음은 벌써 저 높은 트럼펫 소리를 따라 하늘 멀리 날고 있지 않았던가.

    세월이 한참 흘러 위 시들의 정서가 ‘그리움’의 세계에 닿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과거의 근심 없던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든 가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막연한 설렘에서 오는 그리움이든, 그리움은 늘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는 힘을 가졌다는 생각도 가져 보았다. 김용호 시인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아름다운 감정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다한 시인이라 하겠다.

    하지만 사람은 유한한 존재. 언젠가는 이 그리움의 세상을 떠나야 하는 운명을 공평하게 손에 쥐었다. 이 공동운명에 놓인 화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웃에 대한 안타까운 애정과 그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담담하게 노래한 시가 ‘주막에서’이다. 김용호 시인의 시를 다 함께 음미해 보자는 뜻에서 전체를 소개해 본다.

    “어디든 멀직암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代代(대대)의 슬픈 路程(노정)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威儀(위의)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 가고// 세월이여!// 소곰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다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이 시에서 한 번 더 눈여겨 확인해볼 만한 부분은 ‘代代(대대)의 슬픈 路程(노정)’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은 이 길 위에서 나고 죽었다. 송덕비라는 욕심은 이 길 위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짧은 삶에서 우리가 기릴만한 것은 무엇인가를 이 시는 묻고 있을 뿐이다.

    정삼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