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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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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그대들은 호연지기 끄트머리라도 있는가- 권영민(창원문성대 건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0-07-22 20: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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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가 아주 유치했을 때와 달리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세상을 보는 관점은 물론 이성적 판단 기준이나 가치관이 복잡다변으로 이상해 진 듯하다. 불초가 대학생일 때는 5공화국이 끝나고 이후 민주화 격변기를 거치는 과도기였고, 졸업 후 IMF시절에도 여야, 좌우이념을 막론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국난극복에 전력했으며, 정(正)과 의(義)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자니 모든 것이 명확하게 판단이 되고 누구나 동의하고 그 정의를 따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게 된 힘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념이 갈등하고, 세대가 양분되면서 같은 사안을 서로 다르게 보면서 갈등과 분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기가 찬 일은 스스로 자신이 처한 이익의 방향과 필요에 따라 그 굴레를 얼마든지 갈았다 끼우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똑같은 사안의 상황에서도 서로를 적폐라는 틀에 싹 다 집어넣어버리고서는 서로 자기주장만 해대고 있자니 정(正)과 부(否)만 남게 되고 모든 것은 정과 부의 기준에서만 답을 찾는다.

    문제는 정과 부에서 반드시 정이 정으로만 단정할 수 없고, 부를 부로만 단정할 수 없는 모순된 상황들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고 바로 잡으려 하지 않으니 모순이 생기고, 이 모순 속에 사로잡힌 자들은 뻔뻔하거나 비겁해지고 있다. 더 큰 일은 뻔뻔한 집단일수록 가식으로 포장하고 있으니 분별이 어려워 따르는 이들이 사리 깊은 판단을 못하게 되고, 비겁한 집단은 비겁함을 넘어서 정의로운 도리를 지키고 있다고 위선을 부리고 있으니 이 또한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분별력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갈등과 분열과 대립의 골은 깊어지기만 한다. 스스로 자임하는 자들은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 남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굽어있지 않아야 한다’ 는 말이 있다. 내가 굽어있다면 굽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처신이고 책임 있는 자들의 의무이다. 나보다 많이 굽음과 적게 굽음을 따지거나 굽은 방향과 모양이 다름을 따져 정과 부를 가르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 자질이 없는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이다. 적어도 힘으로 남을 바르게 하려면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굽어 있으면 부끄러움과 신뢰를 받을 만한 처신을 갖추려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되지 않는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 했다. 조금 굽어 있으면 즉시 고치면 될 것을 번지레한 말솜씨로 가식을 떨면서 뻔뻔함으로 덮으려하니 어느 누가 옳다고만 할 것인가. 진실되지 않으니 남 잘못만 보이게 되고, 바르지 못하니 굽은 것만 보이는 것이다. 잘못을 알고도 그런 거라면 죄를 짓는 것이고, 모르고 그런 것이라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런 자들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자신을 일컬어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할 때 흔히 ‘나는 한 입으로 두 말 안 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내뱉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말에는 책임도 따르지만 남을 의식하는 부끄러움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을 일반 평범한 국민들은 오히려 지키면서 살아가려 노력한다. 지킬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양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 일반적인 처신이다. 그래야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무치(無恥) 즉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고, 무치가 되어야 도의(道義)가 바로 서게 되며, 도의가 굳건해야 공명정대하게 되며 그때서야 진정한 힘과 용기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때야말로 비로소 조직이든 나라든 제대로 굴러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조직이나 나라를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그 힘과 용기! 그것이 바로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가 아닐까. 그대들은 호연지기 끄트머리라도 가지고서 지도자라 자임하고 있는가.

    권영민(창원문성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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