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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 상황실은 잠들지 않는다 - 이문섭(국민연금 창원지사 가입추진팀장)

  • 기사입력 : 2020-07-26 21: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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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섭 국민연금 창원지사 가입추진팀장
    이문섭 (국민연금 창원지사 가입추진팀장)

    코로나 임시생활시설은 해외입국자들이 2주간 격리되어 생활하는 곳이다. 정부 각 부서에서 자원을 받아 파견된 인원이 입소자들을 관리한다. 호텔에 도착하자 즉시 업무에 투입되었다. 주어진 업무는 운영요원과 입소자들에게 물품을 지원하는 일이다.

    입소하자마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입국자들에게 지급될 각종 생활용품이 든 커다란 꾸러미를 만들었다. 슬리퍼, 타월, 빨랫비누, 세숫비누 등 각종 생활용품을 몇 박스씩 쌓아두고 여러 명이 피난민처럼 배급받으면서 몇 바퀴를 돌다보면 수백 개의 꾸러미가 만들어진다. 그 모습이 비밀스러운 의식 같기도 재미있는 놀이 같기도 하다.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지겨운 표정이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진풍경이다.

    운영요원과 의무 격리자들이 요구하는 각종 물품의 재고를 확인하고 모자라지 않게 공급해야 하다 보니 물품들이 마른 모래에 물 빠지듯 순식간에 바닥이 나 수시로 장을 보아야 한다. 장보는 일이라고는 아내 뒤를 따라 다닌 이력이 전부인 내가 대형마트의 큰 손이 되어 점장이 고개를 꾸벅거린다. 입소자 중 어떤 외국인은 입소한 지 며칠이 되지도 않았는데 커피를 주식으로 하는지 2주 분량의 믹스커피를 다 먹어 버렸다며 추가로 요구한다. 우리나라 믹스커피가 아주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꼼짝 않고 2주간 낯선 나라의 좁은 방안에서 생활하는 것은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일 것이다. 더러는 갑갑함에 겨워 벌컥벌컥 문을 박차고 호텔 현관까지 내려오거나 복도를 쏘다녀 방호복을 입은 군인의 제지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상황실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낯선 나라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초등학생 반찬 투정 같은 불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 우유 줘, 커피 더 줘, 과일 줘, 스테이크 줘, 밥먹기 싫어, 빵에 버터 발라 줘, 치킨 줘…. ” 딴은 그들의 고통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정색을 하고 여기는 호텔이 아니고 코로나 임시생활 시설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도리 밖에.

    아키노(가명)는 외항선을 탈 계획이었다. 짧은 기간에 큰 돈을 만지기 위해서는 외항선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첫 단계에서 꼬여 버렸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그가 전화로 들은 말은 ‘confirmed’ ‘positive’ ‘corona virus’ 뭐 그런 말이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다니.

    첼시(가명)는 입대하는 남친을 보러 왔다. 2주간의 격리기간은 그리움 못지않게 힘들었다. 연이어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첼시는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첼시의 불안에 가득 찬 문자를 받은 남친은 상황실에 전화했고 현지 의료진과 국가 트라우마 센터의 전화 상담으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첼시가 안정을 되찾은 것은 전문가의 상담보다도 남친의 역할이 더 컸다. 첼시의 남친은 첼시의 방이 보이는 장소에 주차하고는 첼시와 수시로 통화했다. 마치 창밖에서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세레나데처럼, 며칠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임시생활시설 근무 마지막 날,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서를 건네받았다. 졸업장을 받는 느낌이 이랬든가 ? 참 세상의 일은 알 수가 없구나.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 짧은 기간이었지만 코로나 확산 방지에 조그마한 역할을 했다고 스스로 격려한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극복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따름이다.

    이문섭 (국민연금 창원지사 가입추진팀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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