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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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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호복 안에서- 정수경(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 도민참여담당 주무관)

  • 기사입력 : 2020-09-01 20: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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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의료진 방호복을 입었다. 발까지 꽁꽁 싸매고, 마스크, 장갑, 고글까지 완벽한 무장을 하니 코로나19에 맞서는 투사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한나절을 넘기고부터는 방호복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방호복의 지퍼를 슬쩍 내렸다가도, 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행렬이 눈에 들어오면 얼른 여미고 달려갔다.

    해외입국자들에 의한 감염이 확산하면서 각 지자체가 해외입국자 수송인력을 인천국제공항과 KTX 광명역으로 파견했다. 우리 경남은 4월 1일부터 5월 20일까지 3~4인 1조의 2박3일 일정으로 공무원을 파견했는데, 나는 막바지 근무자로 차출됐다. 광명역은 강원도와 수도권을 제외한 부산, 경남, 충청권, 전라권이 목적지인 사람들이 오가는 역이다.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사람들의 행렬이 승차권 발매창구 앞으로 이어졌는데 이때부터 시도 담당자들은 자기 지역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다. 경쟁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Is there anyone going to Gyeongnam?” (경남으로 가시는 분 계십니까?)

    해외 입국자들의 세부정보(이름, 연락처, 자차 이동여부, 하차역, 최종목적지 등)를 파악하고 수송 가능한 역으로 발권을 안내했다. 세부정보는 다시 시·군 수송공무원에게 전달되고 담당 공무원은 도착시간에 맞춰 마중을 한다. 해외 입국자가 최종 목적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중교통이용으로 인한 감염확산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때로는 밤 두세 시를 넘기도 했는데 그 시간까지 각 시·군 공무원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고 경남도민인 것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5월 말부터, 해외 입국자가 집결하는 광명역에 중앙정부 차원의‘종합정보센터’를 설치해 코로나19 장기전에 이미 들어갔다. 해외 입국자들로 인한 확산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초기부터 전국에서 파견돼 관문을 지켜낸 공무원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경남은 50일 동안 총 68명이 파견되어 3009명을 수송했다. 수송 인원만큼의 도민들이 코로나19에 노출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는 말도 되겠다. 새로운 교대 근무자들이 도착하고, 근무수칙과 주의사항을 자세하게 알려준 후 방호복을 홀가분하게 벗었다. 나비가 감싸고 있던 고치를 벗고 나오듯, 대기의 온도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가두어 놓은 하얀 방호복 안에서, 위험과 안전의 경계, 개인과 공동의 문제, 민과 관의 의무와 책임을 생각해 보았다. 얇은 방호복 하나로 공무원과 도민의 입장으로 바뀌는, 가볍고도 무거운 공동체의 가치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까.

    정수경(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 도민참여담당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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