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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노잣돈- 원순련(미래융합평생교육연구소 대표·교육학박사)

  • 기사입력 : 2020-09-21 20: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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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흘 후면 친정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어머님 떠나시고 난 후 몇 개월은 나도 몰래 퇴근길에 어머니께서 7년간이나 계셨던 요양원으로 자동차가 달려가고 있음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두어 해가 지나가는 동안 정말 천천히 어머님을 잊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미안하여 흠칫 놀라곤 한다.

    요양원을 찾아갈 때마다 어머님은 온갖 당부를 다 하셨다. 그 당부를 우리들이 건성으로 넘기는 것을 아시면서도 ‘콩나물은 스쳐가는 물만 먹고도 저렇게 자란단다’ 하시며 마지막에 빠지지 않은 것이 수의 이야기셨다. 수의를 지어 장롱 안에 두었으니 죽고 나면 수의를 사지 말고 손수 준비한 수의를 꼭 입혀달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당부대로 보자기에 싸 둔 수의를 풀었을 때 버선 속에 봉투 하나가 들어있음을 발견했다. 장남이 다니는 회사의 로고가 박혀 있는 누런색 봉투엔 창호지에 싼 1만원권 15장이 나왔는데, 그 창호지에 ‘저승길 노잣돈’이라고 적어 놓은 게 아닌가? 장의 일을 하시는 분께서 수의는 호주머니가 없으니 이 돈은 여기 넣으면 안 된다고 봉투를 넘겨주셨다. 장례를 마친 후 동생들이 어머님 이름으로 헌금을 하라고 하며 그 봉투를 나에게 다시 넘겨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찬찬히 살펴보니 노잣돈을 넣어 둔 햇수가 40년이 지나 지금의 1만원권보다 가로 세로가 1.5㎝는 더 넓어 보였다.

    어머님의 숨결을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다른 돈으로 교체해 헌금한 후 그 봉투를 서랍에 넣어 두고 지금도 가끔씩 어머님을 만나곤 한다.

    노잣돈이란 먼 길을 오가는 동안 드는 돈이다. 특히 저승길을 편히 가라고 상여에 꽂아주는 돈을 노잣돈이라고 말한다. 정말 저승길에 노잣돈이 필요하다면 왜 장의사는 이 돈을 어머님 수의에 넣지 말라고 했을까? 나는 오래오래 이 봉투 속에 숨어 계시는 어머님 냄새를 잊지 않기 위해 그 돈을 다리미로 한 장 한 장 다렸다. 그리고 어머님은 평소에 여러 사람에게 베풂의 모습을 보이셨으니 틀림없이 저승곳간에 노잣돈도 용돈도 가득할 것이라 믿으며 서랍 속에 봉투를 다시 넣어두었다. 어머님도 지금 내 모습 보고 계시겠지.

    원순련(미래융합평생교육연구소 대표·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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