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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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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통영 미륵산 편백나무 숲지기, 나폴리 농원 길덕한씨

15년을 바친 편백숲엔 지금도 열정이 자랍니다

  • 기사입력 : 2020-10-28 21: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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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미륵산 중턱에 자리 잡은 ‘나폴리 농원’에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부드러운 톱밥이 뿌려진 오솔길을 맨발로 걷노라면 편백나무 특유의 상쾌한 향이 코 끝에 닿는다. 두 팔을 벌리고 크게 호흡하면 공해와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잠시 눈을 감거나 잔디에 누워 잠을 청해도 좋을 곳이다.

    이곳 4000여평의 편백나무 숲은 길덕한(59) 대표가 15년 이상을 꼬박 매달려 키워낸 인생 역작이다. 지금은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탐방객이 찾는 힐링관광 명소가 됐다.

    길덕한씨가 나폴리 농원을 돌아보며 편백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성호 기자/
    길덕한씨가 나폴리 농원을 돌아보며 편백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성호 기자/

    ◇통영바다에 반해 키위농장 덜컥 매입= 경기도 포천이 고향인 길 대표가 통영으로 내려온 것은 그의 나이 37살이던 1997년이었다. 스킨스쿠버를 좋아했던 길 대표는 통영바다에 반해 당시 키위농장이던 이곳을 덜컥 샀다. 가족과 함께 바다 가까운 곳에서 키위 농사지으며 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키위 수정하는 법, 가지치기 등 열심히 영농교육을 받았다. 길 대표의 노력을 아는 듯 농사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농사를 잘 짓는 것과 돈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키위를 사먹을 땐 개당 2000~3000원을 줬는데 농사지어 팔려니 10분의 1이더라구요. 몇 단계씩 거치는 유통과정을 몰랐던 겁니다. 헛농사 지었다 싶고 가족들 먹여 살릴 일도 걱정이었죠.”

    길 대표는 인터넷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는 천리안 등 PC통신이 접어들고 인터넷이 막 보급될 시기였다. 유통과정 없이 직접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농부가’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친환경 유통업으로 승승장구= 농부가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 ‘농부가’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아 금새 커졌다. ‘농부가’ 홈페이지가 자리를 잡는 데는 키위 박스에 키위 줄기도 함께 넣어주는 등 농부와 직거래한다는 느낌을 강조한 길 대표의 마케팅도 한몫했다. 품목도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키위 말고도 동네 할머니가 기른 호박, 유자 등도 함께 팔았다. 홈페이지는 이내 친환경 농산물 유통사업으로 덩치를 키웠다.

    “서울 사는 한 지인의 제안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키위 농사짓기 4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이었죠.”

    서울 홍릉 KIST에 벤처사무실을 차리고 일산에 ‘농부가’라는 이름으로 100평이 넘는 농수축임산물 매장을 열었다. 길 대표의 매장은 친환경 농산물을 농부가 직접 파는 매장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 130곳이 넘는 가맹점 사업으로 확대됐다. 40~50명의 직원들이 전국 가맹점에 농산물을 공급했다.

    욕심이 화를 불렀을까? 잘 나가던 사업은 자금의 흐름이 막히기 시작했다. 가맹점에서 못 받은 돈들이 쌓이면서 농가에 결제를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농민에게서 ‘결제가 안 됐다’는 항의전화가 오기 시작하더라구요. 동업자들은 ‘사업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면서 가볍게 생각하고…. 나중에 보니 빚만 잔뜩 늘어나 있었죠.”

    ◇다시 빈 손, 편백으로 날갯짓= 40대 중반에 다시 빈손이 됐다. 고향의 땅을 팔아 빚을 정리한 어느 날 벤처타운 옆 사무실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나눈 편백나무 얘기가 기회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편백나무 연구하던 분인데 더 이상 연구개발비를 댈 수 없어 사업을 접겠다고 하더라구요. 통영 키위농장 주변에 편백이 자생하고 있으니 제가 이어받아 사업을 진행해보마 했죠.”

    그렇게 편백나무에서 기름을 짜내는 방법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 수십 장을 받아 통영으로 내려왔다. 과감히 키위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편백을 심었다. 한편으론 일본에서 자료를 구해 번역하고 실험하는 등 편백 연구에 매달렸다.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면역력 증강과 아토피, 비염, 피로감 해소 등에 좋습니다. 키가 크고 오래된 편백나무에서 피톤치드가 왕성하게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편백나무는 수령 13~25년 때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편백나무 얘기로 접어들자 길 대표가 쏟아내는 편백 예찬론이 끝이 없다. 그동안 편백나무 연구에만 매달린 결과다. 길 대표의 이 같은 노력은 곧 성과로 이어졌다.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2009년 드디어 편백나무 잎에서 피톤치드를 파괴하지 않고 편백수를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진공 상태에서 40~60도 저온으로 끓이는 방법이죠”

    길 대표는 이 기술을 특허 등록했고, 그해 대한민국 특허대상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이 방법으로 추출한 편백수로 ‘가습액’을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다음 해에는 편백오일을 마이크로캡슐에 담아 섬유에 집어넣는 방법을 연구해 피톤치드 이불, 옷, 베개 등을 내놨다. 이 기술 역시 대한민국 특허대상 동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편백수와 편백오일을 활용한 화장품과 비누, 화장수, 편백차 등도 나폴리 농원의 특화 상품이 됐다.

    방문객들이 편백나무 숲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나폴리 농원/
    방문객들이 편백나무 숲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나폴리 농원/

    ◇나폴리 농원 힐링관광 명소로 자리매김= 한 때 키위 밭이던 미륵산 중턱도 지금은 1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자라는 치유의 숲이 됐다. 15년 동안 매일 조금씩 가꿔온 것들이다. 그동안 가꿔온 편백나무 산책로에는 피톤치드 에어샤워, 항균족욕, 에어카페, 숙면치유실, 해먹쉼터, 물치유, 원예테라피, 명상쉼터 등 18가지 힐링코스가 조성됐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100명 이상이 방문하는 힐링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해먹에 누워 쉬고 있는 가족방문객./나폴리 농원/
    해먹에 누워 쉬고 있는 가족방문객./나폴리 농원/

    나폴리 농원은 농촌진흥청, 경상남도, 통영시로부터 ‘농촌교육농장’으로 인증받았고, 지난해에는 ‘치유농장’으로 선정됐다. 지난 6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웰니스여행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편백나무 숲을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 힐링 플레이스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공해와 스트레스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가면 좋겠습니다”

    ◇도전은 아직도 진행형= 길 대표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편백을 활용한 연구 역시 계속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등록한 특허는 피톤치드 공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2017년 경남항노화사업에 선정돼 경남테크노파크로부터 1억4000만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대학 연구팀에 맡겨 조사한 결과 피톤치드 공기는 기관지폐세포를 4배나 증가시키고, 폐렴균을 절반 이상 소멸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아직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죠.”

    길 대표는 피톤치드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카페 등 그동안 구상해 놓았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나폴리 농원도 꾸준히 가꿔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방문객들에게 숲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고 싶어 숲 해설가 자격증까지 땄다.

    길덕한씨가 나폴리 농원을 돌아보며 편백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성호 기자/
    길덕한씨가 나폴리 농원을 돌아보며 편백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성호 기자/

    “15년을 가꿨지만 나폴리 농원은 여전히 다듬어가는 과정입니다. 단 한 명이 오더라도 만족하고 마음 편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지금도 길 대표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 편백나무 산책로에 편백 효소를 뿌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민감한 효소의 비율을 맞춰야 하는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길 대표만의 일이다.

    “식나무는 좀 더 성장하면 터널 산책로가 조성될 겁니다. 바나나도 잎사귀가 커다랗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죠. 비닐하우스는 걷어내고 장비를 들여 제대로 된 교육공간을 마련할까 합니다”

    길 대표는 “여기 있는 모든 나무 하나하나가 제 손을 거친 것들”이라며 “항상 도전하고 그 일을 헤쳐 나가는 열정적인 삶이 사는 것 같은 삶 아니겠냐”며 웃었다.

    김성호 기자 k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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