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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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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자본주의의 풍경들- 이강주(창원대 교수, 2020대한민국건축문화제 운영위원장)

  • 기사입력 : 2020-11-11 20: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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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난 2세기를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관점으로 간략하게 설명해본다. 산업혁명이 원숙한 시점인 19세기 후반 시작된 1차 세계화는 소위 선진국들의 제국주의 시대로 1차 세계대전을 불러들인다. 곧이어 경제대공황과 극우 민족주의의 득세로 1차 반세계화가 펼쳐지는데, 이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큰 포악함을 가져온다. 1947년 마셜플랜의 나팔소리로 시작된 2차 세계화는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깨지기까지 60년 동안 지속된다. 현재는 명백히 2차 반세계화 시대인데, 그 선봉장에 논란의 중심인 트럼프가 있다.

    2020년 3월 중순 기업들의 연쇄부도 가능성으로 세계 공황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들 즈음, 미국 연방준비제도(FRS)는 무제한으로 민간기업의 채권을 사들이겠다고 선언한다. 국가가 민간기업의 부채에 보증을 서겠다고 나선 것인데, 이로써 투자자들이 마음 놓고 기업에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된다. 미국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동안 회사채로 8500억달러를 빌리는데, 이는 지난 해 같은 시기의 두 배 정도 되는 금액이다. 그 결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은 다국적 호텔과 항공사들, 더구나 재무상태가 불량한 기업까지도 필요 자금을 어렵잖게 조달한다. 기업이 못 갚으면 국가가 갚아주면 된다는 정책은 역사상 초유의 일로 참 이상한 불황이라고 불린다.

    21세기 세계화와 도시, 불평등을 하나의 논리구조로 엮어낸 사스키아 사센은 ‘축출’이라는 말로 자본주의를 경계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 시행으로 정부와 개인은 빚더미에 앉게 되는 반면 수퍼파워 기업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것이 그녀가 설명하는 축출 자본주의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지목한다. 15단계의 복잡한 과정으로 태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서민에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국가 정책이 어떻게 금융 세계로 편입되어 변질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가 정책을 금융 탐욕의 도구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고급 수학자와 탁월한 변호사, 회계사 등 소위 엘리트들이 동원된다. 그리하여 거래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괴물이 등장하고, 이 괴물이 미국에서만 1300만 가구 이상의 주택들을 압류해 버린다. 축출 자본주의의 지배 하에서는 자연, 환경, 사회적 약자, 심지어 중산층까지도 체제 밖으로 축출되고 약탈당하는 것이다.

    선사시대에는 사냥물이 가치를 가졌을 뿐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수고, 즉 노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 반해 가치가 없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능력이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생존력이다. 칼 폴라니의 이러한 통찰은 노동, 금융,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거쳐 이제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자료를 활용하는 AI(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현실을 통해 증명된다. 쇼사나 주보프는 사이버 공간의 자료를 감시하고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채굴하여 사람들의 경험과 계획을 거래하고 경매하는 AI와 4차 산업혁명을 ‘감시’ 자본주의로 파악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거짓이 진실을 덮어버리고 진실과 사실과 거짓의 개념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악명 높은 사례가 가짜 뉴스 생산 알고리즘인 GPT-3인데, 인류역사상 진실이 가장 강력한 도전을 받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전쟁, 물신숭배, 축출과 약탈을 저지하고 진실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이라도 들어야 할까? 지혜의 말씀은 이렇게 전한다. ‘빚진 자는 채주의 노예가 된다.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고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하라. 재물과 영광과 생명은 겸손과 경순의 보상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니, 돈을 탐내면 많은 근심이 자신을 찌른다.’ 오호라 우리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강주 (창원대 교수, 2020대한민국건축문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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