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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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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백넘버 51-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 기사입력 : 2020-11-12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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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미로 야구를 시작했다. 공을 좋아해서 축구와 농구, 당구, 족구, 탁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지만, 야구는 주로 ‘시청’하는 것에 만족했던 종목이다. 운동 역시 자신과 맞는 것이 있어서인지 주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야구라는 스포츠는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야구 경기라는 것을 해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투수로 나서 ‘완투’했던 기억인데, 경기 후 한동안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번에 야구를 시작한 데에는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과 몇 경기 안 되었지만 현재까지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타율도 아직은 좋은 편이다. 직접 선수로 뛰면서 느낀 것은 그 동안 야구라는 스포츠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구나 하는 점이다. 흔히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야구 선수들은 거의 뛰지 않고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는 식으로 약간의 조소가 담긴 표현이다. 그런데 야구는 축구나 농구와 같은 체력을 요하진 않지만 매우 섬세한 집중력을 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비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나 공을 잡고 던지는 것, 심지어 주루를 할 때 베이스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하거나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격을 하는 것도 투수가 던진 공을 배트 중심에 맞춘다는 것이 확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무엇보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축구는 한두 사람이 잘 못 뛰거나 실수를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축구 경기에 퇴장을 뜻하는 ‘레드 카드’가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야구 경기는 9명의 선수가 수비와 공격에서 자신의 자리와 타석에서 고유의 역할을 해야 한다. 수비에서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날아오는 공을 온전히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타석에 들어서서도 투수의 공을 보고 치는 것은 자신만의 몫이다. 물론 투수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소위 강타자의 역할이 큰 것은 맞지만,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퍼즐을 맞추듯이 모여서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야구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각자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배치가 가능하다.

    투수와 포수, 내야수와 외야수 등 각자의 포지션에 따라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야구의 본질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야구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세 명이 아웃되지 않으면 이닝이 끝나지 않는다. 축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면 끝이 난다. 후반전에는 힘이 있는 선수가 더 많이 뛰어 경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는 각 선수가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도 그 끝을 알 수 없다. 어려운 순간이나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집중하고 걸어갈 때에야 공격과 수비가 교체되듯이 상황은 바뀔 것이다.

    유니폼 뒤에 새겨진 백넘버는 51번이다. 첫째 아이가 51세에 야구를 시작했다는 의미로 정해 주었다. 지금은 신발과 헬멧 외에 글러브와 배트 등 대부분을 빌려 쓰고 있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축구나 농구를 할 때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다. 내가 다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잘 못하는 것을 보면 답답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역량과 역할을 생각하고, 내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게 부족한 것들이다.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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