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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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증세, 사회연대, 설득의 정치 - 감정기 (경남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20-11-22 21: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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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재정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등장하는 ‘눔프(NOOMP)’라는 용어가 있다. 영어 ‘Not out of my pocket(내 주머니에서는 안 돼)’의 약자로서 복지혜택을 늘리는 데에는 찬성하나 세금 부담을 지기는 원치 않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복지 관련 증세를 기피하는 이유로는 불확실한 미래의 편익보다는 당장의 손실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거나, ‘세금은 빼앗는 것’이라는 편견에서 오는 반감 때문이거나, 어떠한 돌출적 이슈에 매몰되어 다른 중요한 측면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떠한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자기이익에 대한 유불리를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지금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자기이익에 충실한답시고 한 선택이 기대와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음에 착안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세부담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상속세 폐지를 지지한 결과 부자들만 좋아지게 만든 미국의 사례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 우리나라에도 지금 이와 비슷한 일이 빚어지고 있다. 바로 ‘세금폭탄’ 프레임이다. 정부의 일련의 조세정책을 세금폭탄으로 몰아가는 ‘돌출적 이슈’에 압도당한 나머지, 무주택자들까지 고액주택 소유자들의 조세저항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세금폭탄 담론이 부상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집권 초기에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인상했을 때였고, 이번 담론은 종부세 인상안과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발표되면서 비롯됐다. 여기에서 이러한 조세정책들에 대해 소상히 다룰 계제는 못 되고, 세금폭탄 프레임의 타당성에 대해서만 잠깐 따져볼까 한다. 말처럼 세금이 ‘폭탄’이 되려면 그 충격의 범위와 규모가 커야 한다. 그러나 알려진 사실은 이와 거리가 있다. 우선, 세금을 포함하는 국민부담금의 규모나 민간 부동산 보유세의 비중은 OECD 국가들의 평균치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종부세 납부 의무자는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며, 납부 의무자가 추가로 부담할 세금은 집값 상승으로 인한 시세차익의 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 거둬도 증가액은 1년 국세수입의 0.5% 남짓밖에 안 된다. 폭탄이라 부르기가 무색한 수준이다.

    ‘집 가진 죄’, ‘징벌적 조세’ 등의 표현도 ‘세금폭탄’과 종종 짝을 이루어 운위되는 피해야 할 관념들이다. 납세거부 정서를 자극하는 이런 류의 담론이 관련 정책과 정부 및 정권을 비판하는 데에는 힘을 발휘하겠지만, 국민의 정확한 현실 인식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사회 일각에서 이같이 신랄한 반응을 보이기에 이른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이념과 명분에 경도된 나머지 정책집행의 보폭을 조정하는 데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정 계층을 적대적 표적으로 삼은 듯한 감을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증세의 당위성과 수준의 타당성 등을 국민들에게 충실하고 충분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였는지 자문해볼 필요도 있다.

    이제 ‘눔프’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아직 갈 길이 먼 우리의 복지 현실과 과부족 상황인 국가 재정수입을 감안하면 증세는 불가피하다. 무리 없는 증세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할텐데, 국민의 사익추구 동기에 호소해서는 소기의 성과를 얻어내기 어렵다. 가치지향에 호소하는 설득 전략에 눈 돌릴 필요가 있다. 사회연대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일컫는다. 연대의 가치를 구현하는 좋은 예를 사회복지에서 찾을 수 있음은 주지하는 바다.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이념이 다른 사회집단들 사이에 타협과 연대를 이뤄온 과정이 복지확대의 역사였으며, 누진적 조세에 대한 협조는 그러한 연대 정신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조세저항의 정서를 자극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설득의 정치가 절실하다고 보는 것도 이런 사실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감정기 (경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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