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성산칼럼] 염치! 경계하고 삼가는 마음 - 권영민 (창원문성대 건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0-11-25 21:12:53
  •   

  • 인문학은 사람에 맞는 인격과 인품을 갖추는데 필요한 양학(養學)이라고 생각한다.

    500년 조선의 역사를 떠받치고 이어온 것에는 비록 학풍은 달라도 이러한 양학이 사람을 가르치고, 벼슬을 하고,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경영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삼아온 것이 조선의 근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격조 있게 다듬어져 행동의 양식이 된 것이 바로 조선의 힘인 선비정신이라고 본다.

    성현들이 말씀하시는 효와 충은 대표적인 선비정신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한 집안의 근간은 효이고, 효를 중심으로 하여 가문의 위계와 가문마다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우리는 이를 흔히 가풍이라고 한다. 그 가풍은 조선이라는 한 국가의 가치관과 정체성의 범위 안에서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크게는 충(忠)이라는 선비정신으로 하나가 되는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충은 가문에서의 고유한 효의 실천양식들이 응집된 선비정신의 행동이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선비정신의 근본은 효이고 실천양식은 신(信), 진(眞), 성(誠), 예(禮)라고 본다.

    논어 위정편(爲政編)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서경’에 이르기를 ‘효도하라, 오직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게 하라, 이를 정치에 베풀도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니 어찌 정치를 하는 것만이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는 이렇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갖추어져야 정치를 할 수 있었다.

    정치의 근간은 효와 마찬가지임을 의미한다고 본다. 효행은 섬김과 순종과 공경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한다는 자들의 생각과 언행은 이와 비교한다면 어떠한가. 국민을 부모로 알고 효행하듯이 행하고 있는가. 도무지 기본조차 제대로 훈육되어졌다 여겨지는 자 있던가. 또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미더움(信)이 없으면 그 좋은 점을 알 수가 없다. 큰 수레에 쐐기가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 끝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갈 수 있게 한단 말인가?” 수레가 쐐기와 끌채가 없으면 굴러갈 수 없듯이 사람에게 미더움(信)과 참됨(眞)과 성함(誠)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며 행세를 하고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요즘 정치한다는 자들 중 이 신(信), 진(眞), 성(誠)을 두루 겸비하기는커녕 이것들 중 하나라도 갖추고 행세는 자 있던가.

    입어례(立於禮)라는 말이 있다. 또 ‘예를 모르면 설 수 없다(不知禮無以立)’ 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不學禮無以立)’는 말이 있다. 사람은 예를 알고 갖추게 될 때 남이 알아주게(立)되고 바르게(立)설 수 있으며 존재(著則明)한다고 이해되는 말이다. 형식적인 예는 서로 벽을 마주하게 되는 형상이 되며 반드시 마음(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己欲立而立人). 알지 못하면 배워야 되고, 배우면 익혀야 된다(學而時習). 나로 인하여 타인이 불쾌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을까, 나로 인하여 타인이 해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경계하는 마음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행동실천이 예(禮)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의 근간은 타인을 위한 배려이다. 또한 이 예를 갖추고 정치하는 자 있던가.

    학생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잔소리가 있다. 염치에 대한 것이다. 염치가 있으면 직장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있어 자신을 다스리는 수단이 되며 자신을 깨우치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며, 행동이 신중해지고 말을 삼가게 된다. 정치를 하든, 크고 작은 조직의 책임을 맡아 보든, 한 가정을 이끌고 가든, 후학을 가르치든 간에 무엇을 하든지 그 당사자는 반드시 스스로를 살펴 항상 경계하고 삼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염치는 신(信), 진(眞), 성(誠), 예(禮)를 이루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경계의 수단이라 할 것이다.

    권영민 (창원문성대 건축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