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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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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거짓말- 강현순 (수필가)

  • 기사입력 : 2020-11-29 19: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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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이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왠 낯모르는 남자가 다가왔다. 대략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지갑을 잃었다며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내게 구걸하였다. 행색으로 보아 선한 시골사람 같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가 원하는 금액을 선뜻 건네주었다.

    두어 시간 후 놀랍게도 다른 장소에서 그를 또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같은 방법으로 또 구걸하는 것이었다. 순간, 그의 천연덕스러움에 배신감이 몰려왔다.

    흔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긴장하여 얼굴이 빨개지거나 맥박이 빨라지는 법이다. 코 주변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고 확인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으며 맥박을 재보거나 코 주변을 만져보는 일은 더더욱 못할 노릇이었다.

    사람들은 일시적 편의와 방편으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곤 한다. 8분마다 하얀 혹은 빨간 거짓말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이가 하나씩 빠진다면 이가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재미있는 속담도 있다.

    정말이지 어느 누구라도 거짓말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기보다 거짓말을 쉽게 하는 까닭은, 진실은 책임이 뒤따르지만 거짓말에는 구애나 구속 등이 없다는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허나 근거도 없는 그 거짓말에서는 신기하게도 싹이 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두 번 세 번 하게 되고 나중엔 감당을 못하게 된다. 마치 굴리면 굴릴수록 점점 더 커지는 눈덩이처럼.

    거짓말 중에서도 단호히, 해서는 안 될 게 있다. 반쯤의 진실을 포함한 거짓말과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거짓 증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왜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것일까. 타고난 강심장이거나 죄의식을 도무지 못 느끼는 사기꾼일까. 자꾸 하다보면 나쁜 버릇이 된다는 걸 모를까. 그날은 불쾌감으로 인하여 밤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이왕 하는 거짓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하얀 거짓말만 세상에 넘쳐났으면 좋겠다.

    강현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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