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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벽화 이제 그만 그리면 좋겠다- 김성호(통영거제고성 본부장·부장)

  • 기사입력 : 2020-12-03 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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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동피랑은 높이 172m 꼭대기에 솟아 있는 동포루를 중심으로 마치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반경 150m의 가파른 동산이다. 바로 아래에 통영항이 있고 남해안 수산물이 모여드는 통영중앙시장이 있다. 이 같은 입지로 동피랑에는 예부터 삶이 궁색한 서민 마을이 형성됐다. 고깃배 선원, 바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점쟁이와 무당들, 중앙시장에서 장사하는 영세 상인들이 동피랑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성냥갑 같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찼고 가파른 계단과 채 1m도 안 되는 너비의 골목길이 여기저기 거미줄처럼 형성됐다.1990년대까지도 통영 동피랑은 삶이 고단한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차량은 고사하고 리어카조차 지나지 못하는 좁은 골목 언덕빼기 집까지 연료며 물, 식자재를 나르는 것만 해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동피랑이 뜨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벽화를 그리면서 부터다. 당시 철거 예정이던 동피랑을 살리겠다며 시민단체가 전국 벽화 공모전을 연 것이 그 시작이다. 전국에서 찾아온 미대생과 개인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반응은 대단했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은 특유의 어촌도시 감성과 더해져 입소문이 났고 그 후 줄곧 통영의 1번 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동피랑 벽화마을의 성공은 전국적인 벽화 열풍을 불렀다. 성공을 거둔 후발주자들도 꽤 된다. 부산 안창마을 벽화사업, 연간 10만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감천마을 등 제법 알려진 벽화마을만도 스무 곳이 넘으니 놀랄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과하다. 도시의 벽은 물론 한적한 시골에까지도 재능기부, 봉사활동의 이름으로 벽화가 그려지고 있다. 범죄를 예방한다고 벽화를 그리기도 하고, 쓰레기 불법 투기를 막는다며 벽화를 그리기도 한다. 마음은 갸륵하지만 상당수는 흉물로 방치되고 있으며 전국의 벽화가 비슷비슷한 것도 문제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처한 예술인 지원을 위해 정부가 대규모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마을과 공공시설 등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이 사업에 759억원이 쏟아질 예정이다. 개성없는 벽화가 전국에 우후죽순 그려지지나 않을지 걱정이다.벽화는 분명 적은 돈으로 효과 만점인 ‘가성비 갑’ 아이템이지만 행정 편의주의와 만나면 흉물이 되고 만다. 벽화 그릴 돈으로 좀 더 생산적이고 실험적이며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개발할 수는 없을까. 다시 동피랑을 돌아보자. 통영 동피랑을 띄운 것은 벽화가 아니다. 골목마다 묻어있는 어촌도시 특유의 정서가 동피랑을 띄웠다. 벽화는 단지 거들었을 뿐.

    요즘도 벽화그리기 봉사를 했다거나 마을 담장에 벽화를 조성한다는 보도자료를 심심찮게 보곤 한다. 남 따라 그리는 벽화는 이제 그만 그렸으면 좋겠다. 여기까지가 딱 좋다.

    김성호(통영거제고성 본부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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