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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57) 태강즉절(太剛則折) -너무 단단하면 부러진다

  • 기사입력 : 2020-12-08 07: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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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 좀 드신 분들은 최인규(崔仁圭)라는 사람을 다 알 것이다. ‘3·15부정선거의 원흉(元兇)’이라는 것을. 1958년 3월부터 내무부 장관(지금의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아 1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부정선거를 총기획하고 실행해 자유당 소속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이기붕(李起鵬) 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최고의 공훈을 세운 사람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야당 후보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당선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이었다. 그때 야당 후보는 장면(張勉)이라 이기붕은 상당히 위험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 최인규를 선거를 총괄하는 내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최인규는 조직적인 부정선거에 공무원과 경찰을 총동원하고, 심지어 조직폭력배를 대거 동원했다.

    투표 당일 기표소 안에 경찰이 지키고 서서 자유당에 찍는지 안 찍는지 감시를 했고, 개표소로 투표지함을 싣고 가는 동안에 투표지함을 중간에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한 날 오후부터 시위가 일어났다. 그는 발포명령을 내려 학생들을 죽게 하고, 또 공산주의자로 몰았다. 얼마 뒤 사표를 내고 국회의원 일만 전념하겠다고 결심했지만, 4·19 이후 체포되어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설치며 부정선거를 지휘할 적에 아는 이들이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으나 자기를 알아 준 대통령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더 설쳤다. 대통령의 말이라면 “지당(至當)하신 말씀입니다”라고 하며 분별없이 무조건 따랐기에 별명이 ‘지당장관’이었다. 최인규 때문에 이 대통령은 부랴부랴 하와이로 망명하고, 이기붕 일가는 자살하고, 자유당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1979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야당인 신민당 총재가 되었다. 그 이전의 총재와 달리 사사건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강하게 저항하여 대통령을 계속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 등이 김영삼 제거작전에 들어가 무리한 수를 써서 김영삼의 야당 총재직과 국회의원 직을 박탈하였다. 9월 29일에 국회에서 제명했는데 곧바로 부산,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한 달도 안 된 10월 26일 박 대통령은 그의 가장 심복으로 여겼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되었다. 차지철 때문에 박 대통령이 시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淸)나라의 학자이자 대신인 증국번(曾國藩)은 그의 아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지의 도리는 단단함(剛)과 부드러움(柔)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 한 쪽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부드러우면 쓰러지고,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요즈음 추미애 장관이 하는 조치는 너무 강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는 일이 이치에 맞는지 역사의 흐름에 맞는지를 반드시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단단한 쪽으로만 치달려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 太 : 클 태. * 剛 : 단단할 강.

    * 則 : 법칙 칙. …면 즉.

    * 折 : 부러질 절.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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