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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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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함안 미니어처 공예가 송용관 씨

기억 되살리고 추억 버무려 ‘아주 작은 집’ 지어요

  • 기사입력 : 2020-12-30 21: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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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저마다 어릴적 자신들이 살았던 집에 대한 추억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가 대세지만 40대 이상이면 초가집이나 다양한 형태의 기와집 등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하고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아주 소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때로 돌아가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지난날 우리 부모세대들이 살았던 집 등 다양한 건축물을 아주 작은 모형으로 축소해 되살려 내는 이가 있다.

    송종관 미니어처 공예가가 함안군 가야읍 시내리 덕전마을에 위치한 자신의 한옥 미니어처 전시관에서 활짝 웃고 있다.
    송용관 미니어처 공예가가 함안군 가야읍 시내리 덕전마을에 위치한 자신의 한옥 미니어처 전시관에서 활짝 웃고 있다.

    함안에서 한옥 미니어처 전시관을 운영 중인 미니어처 공예가 송용관(77)씨다. 미니어처 공예가는 손바닥만 한 냉장고에 손톱만 한 피자까지, 아주 작은 물건이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송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무료로 운영 중인 함안군 가야읍 시내리 덕전마을에 있는 한옥 미니어처 전시관을 찾았다. 2년 전에 건립된 전시관을 찾으니 991.7㎡ 규모의 정원이 나왔다. 잘 관리된 잔디밭, 오각정, 조그만 물레방아, 이상한 모양의 다양한 소나무들 등에서 그의 조경 솜씨를 엿보게 했다.

    2층으로 된 전시실에 들어서자 초가집을 비롯, 다양한 형태의 한옥, 전통 누각 등 60여점의 전통 건축물 미니어처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에게서 실물과 근접해 만들려는 정교함과 세밀함이 느껴졌다. 작품들은 실제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작품화한 것도 일부 있었다.

    ◇미니어처와 인연= 현재 전시관 인근에서 태어나 자란 송씨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과 안양 등지에서 정원공사와 분재를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가 많이 건립되면서 분재 일거리가 없어져 모든 것을 정리해 1990년에 마산으로 내려온 뒤 정원공사 등을 하다가 1996년에는 어린시절 자라난 마을 내 현재의 이 곳에 정착했다. 나이가 들면 고향만큼 포근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지역으로 내려온 뒤 취미 삼아 나무로 다양한 조각품들을 만들다가 미니어처의 길로 빠져들게 됐다. 고향으로 이사 온 뒤 우연히 어린시절 살았던 집을 떠올리면서 그대로 재현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 계기였다. 어린시절 넉넉하지 않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가슴속에 늘 간직하며 살아왔기에 추억을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은 민속촌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초가집에서 자랐다.

    하지만 초가집을 미니어처로 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미니어처를 한번도 배운 적이 없었기에 재료나 도구 선택 등 모든 면에서 혼자 일일이 고민하며 챙겨야 했다.

    그는 과거 기억들을 더듬거리며 볏짚을 활용해 초가지붕을 엮어서 쇠브러쉬로 훑어냈고 벽은 진흙을 그대로 버물려 만들었다. 창살 하나하나, 마루 하나하나도 지난 기억을 최대한 살려 복원하려 했다. 그 시절 일상과 느낌도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에 담으려 했다. 깊이 몰입하다보니 잊혀진 기억들이 되살아나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작품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낸 첫 작품에 아내를 비롯 주변에서 호응이 좋았다. 그 자신도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미니어처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는 “초가집을 짓고 나서 기와집이 짓고 싶어서 처음에는 부잣집이나 부러웠던 기와집을 상상으로 지었다”면서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이런 집 저런 집 지어보라고 한 것이 많았다. 미니어처에 몰입하면서 겨울에는 일어나서부터 작업을 시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종관 미니어처 공예가가 자신이 작업한 누각을 살펴보고 있다.
    송용관 미니어처 공예가가 자신이 작업한 누각을 살펴보고 있다.

    ◇건축 미니어처 작업 과정= 미니어처 작품들은 초가집, 너와집, 굴피집, 물레방아, 이수정, 팔각정, 누각, 탑 등 다양한 편이지만 주로 한옥이 많다. 상상해서 지은 것을 제외한 실제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은 크기를 완전히 축소했을 뿐 실물과 거의 똑같다. 현장에 여러번 가서 자로 실물을 측정한 다음, 이에 비례해 다시 크기 축소를 해 작업을 한다. 한옥은 주로 5800분의 1, 크기가 큰 영남루·촉석루는 2만7000분의 1로 축소했다. 작품 소요 시간은 실물 크기에 따라 다른데 한옥은 보통 3개월, 촉석루·영남루 등 누각은 5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작업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세밀한 부분이 많고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연장도 끌 하나고 대부분의 재료가 옛것 그대로이거나, 이것이 어려울 경우 재활용품을 이용한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취미생활을 하려는 그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옥 지봉 기왓장 한 장의 크기는 새끼손톱만 한데, 이를 일일이 자르고 다듬어 6000~7000장을 올린다. 실물 숫자와 똑같이 맞춘 것이다. 이를 위한 재료로 암키와는 못 쓰는 양은냄비를 잘라 망치질을 한 뒤 색을 입혀서 사용하고, 숫기와(볼록한 기와)는 옛날 담뱃대 만든 대를 반조각 내서 이용한다.

    한옥 서까래는 폐목재로 만드는데 서까래를 올린 방법도 한옥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창살은 깨진 소쿠리로, 진흙벽은 옛 방식을 이용해 향토 그대로 사용했다. 물론 접착을 위한 본드나 실리콘 등은 직접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한옥 이 외에 볏짚으로 만든 초가집, 참나무 껍질로 만들었다는 굴피집, 흙과 돌로 벽을 쌓아 통나무로 지붕을 만들었다는 너와집 등도 옛 방식, 옛 재료를 그대로 사용해 만들었다. 또한 물레방아 방앗간은 실제로 방아를 찧고 있고 몇 개의 미니어처에는 LED조명도 달아 작품의 격을 높였다.

    ◇서울 사대문 작업하고 싶어= 지금까지 제작한 60여점의 작품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북한의 부경루를 제외하고 국내 3대 누각에 속하는 촉석루·영남루라고 한다. 시간과 정성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 누각을 작품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현장에 가서 넓이, 폭, 둘레 등 수치를 잰 것을 비롯, 1만장이 넘는 기왓장까지 세워 본 다음 5개월간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해 완성했다.

    그는 “과거 이들 누각을 짓기 위해선 석공, 목공 등 7~8명의 장인이 붙어서 분야별로 작업을 했다”면서 “하지만 미니어처 작업에선 혼자서 건축물에 대한 구조나 규모에서부터 간판작업에 이르까까지 모든 것을 현장에서 조사해 하려고 하니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작품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실물과 흡사하게 만들어내 그의 정성과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앞으로 계획과 관련, 그는 1년 이상의 작업이 필요한 큰 집을 짓고 싶다고 한다. 이미 작업을 끝낸 국내 3대 누각에 이어 숭례문 등 서울 4대문을 작업대상으로 꼽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토로했다.

    그는 “과거 숭례문의 실제 높이 크기 등의 측정을 위해 방송국 등에 부탁했지만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면서 “앞으로 숭례문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꼭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미니어처를 계속하고 싶단다. 그는 “다른 종류의 미니어처를 만들어 전시해도 사람들이 이것들은 보지 않고 집 지은 것만 보려고 하다”며 그 이유을 밝혔다.

    50대 초반인 지난 1996년부터 25년째 미니어처를 해오고 있는 송씨. 밥벌이가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즐거움과 주변의 호응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 요즘도 매일 전시실 앞에서 새로운 작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에게서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장인으로서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글·사진= 이명용 기자 my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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