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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내 이름은 구름이- 남경희

  • 기사입력 : 2021-01-04 08: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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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길냥이야. 따스한 봄날 장터 구경에 나섰어.

    산길을 내려와 샛길로 들어서자 장터가 나왔지.

    입구에 들어서서 코를 킁킁거리는데, 누런 녀석이 나타나 묻지 뭐야.

    “너 누구야? 처음 보는데.”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어. “나 저 산동네 헛간에 살아.”

    “그게 아니라 이름이 뭐냐고?”

    누런 녀석은 털을 잔뜩 부풀리며 쳐다봤어. 그래서 내가 되물었지.

    “네 이름은 뭔데?

    “나 누렁이. 황소처럼 생겼다고 할아버지가 이름 지었어.”

    웃음이 쿡 나올 뻔했어. 멋진 이름도 많을 텐데 하필이면 누렁이라니.

    “나 이름 같은 건 없어.”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누렁이 눈이 왕방울만 해졌어.

    그러자 담장 위에서 우릴 지켜보던 녀석이 말했어.


    “이름 없는 고양이도 있어?”

    턱시도를 입은 것처럼 온몸이 까만데 발만 하얀 녀석이야. 꼬리를 바짝 치켜세우고 좁은 담장 위를 사뿐사뿐 걸어왔어. 꼭 모델 같은 걸음이야.

    내 앞으로 폴짝 뛰어내리더니 “나는 흰양말.” 그러는 거야. 목소리가 도도하고 까칠해.

    또 한 번 웃음이 터질 뻔했어. 왜들 이름 짓는 감각이 그렇게 꽝인지.

    그럼 나는 까만 몸에 군데군데 흰털이 있으니 얼룩이가 되는 건가? 아니면 앞발과 뒷발 색이 다르니 짝짝이양말이라 해야 하나?

    그런 이름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해 말했지.

    “이름 같은 거 꼭 있어야 해?”

    내 말에 누렁이가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어.

    “당연하지. 강아지도 다들 이름 있잖아?”

    더 큰 소리로 내가 말했어.

    “지금이라도 당장 내 이름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이름 없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걸.”

    그러자 흰양말이 말했어.

    “이름이 있다는 건 불러줄 사람이 있다는 거지. 그게 더 중요해. 우리 집사는 말이야….”

    흰양말은 자기 주인이 하루에도 수백 번 자기 이름을 부른다며 자랑했어. 지난주엔 수면 방석을 사다 줬다며 자랑이 끝도 없는 거야. 방석 위에 몸을 대면 잠이 쏟아진다나.

    아무리 좋은 방석인들 우리 헛간 지붕만 할까? 양철 지붕에 누우면 아랫배가 따끈따끈, 잠이 솔솔 쏟아지거든.

    나는 갑자기 장터 구경할 마음이 싹 사라졌어.

    시냇물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데, 왠지 흰양말 말이 자꾸 생각나는 거야. 수면 방석 말고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있다는 말. 마음이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파.

    나는 혼자 된 지 오래됐어. 아마도 여느 길고양이보다 더 오래됐을 거야. 엄마도 아빠도 전혀 기억에 없으니까.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좋긴 하지.

    하지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눈을 감고 생각해봤어.

    목마를 때 시원한 계곡물을 마시는 느낌일까?

    벚꽃나무에 올라가 꽃잎이 흩날리는 걸 지켜보는 느낌?

    아니면 캄캄한 밤에 나보다 덩치 큰 녀석이 내 앞을 쓰윽 지나가는 느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몇 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다시 장터로 내려갔어. 혹시라도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있나 해서.

    채소 가게 좌판 위에 누렁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들어 있어. 살그머니 지나쳤어.

    그러다 비릿하면서도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나는 가게 앞에 멈췄어.

    푸른 고등어랑 은빛 갈치가 가지런히 누워 있어. 빨간 생선도 있네. 침이 꼴까닥 넘어갔어.

    나도 몰래 “야옹. 야아옹.” 소리쳤지.

    “네 이놈, 도둑고양이 저리 가!”

    아저씨가 생선을 다듬다 말고 파리채를 마구 휘둘렀어. 후다닥 도망쳤지.

    나 보고 도둑고양이라고? 안 돼. 그런 이름 싫어.

    발에 끈적끈적한 껌 딱지가 붙은 기분이야. 생선을 훔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말이야.

    다시 장터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갔지.

    세모 지붕의 천막에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며 앉아 있어.

    벽에는 커다란 손바닥 그림이 걸려 있었지. 그 옆엔 글씨가 쓰여 있고.

    손금을 보면 당신의 미래가 보입니다

    언제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생길지 궁금했어.

    책상 위로 얼른 뛰어 올라갔지. 말랑말랑한 내 손바닥을 동그란 돋보기 위에 펼쳐 보였어.

    “야옹. 야아옹.”

    잠이 깬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라 외쳤어.

    “이 더러운 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올라와?”

    동그란 안녕 너머 부릅뜬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어. 후다닥 뛰쳐나왔지.

    ‘더러운 녀석’이라니. ‘도둑고양이’보다 더 싫은 이름이야.

    날마다 깨끗이 하려고 혀가 아프도록 털을 다듬고 있는데.

    한밤에 울어대는 개구리 떼창보다 더 듣기 싫었어.

    아무래도 여긴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옆집은 사진관이야. 진열창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니 코끝이 찡했어.

    그때, 꽃가게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왔어. 양손에 꽃다발과 화분을 들었어.

    바짝 마른 몸매에 등을 꼿꼿하게 펴고 걸었어. 꽃다발에서 라벤더 향이 솔솔 났어.

    나는 꽃향기를 따라 아니 아주머니를 뒤따라갔지.

    도착한 곳은 빨간 지붕에 꽃밭이 있는 집이야.

    푸른 잔디에는 잡초 하나 없이 깔끔했어. 크고 작은 화분에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 있었지.

    나는 담장 아래 웅크리고 앉아 집안을 들여다보았어.

    아주머니가 마당에 구덩이를 파더니 들고 온 하얀 나무수국을 옮겨 심었어. 포도송이처럼 생긴 꽃송이가 하늘하늘 춤을 추었어. 다시 흙을 덮고는 물뿌리개로 물을 뿌렸어. 가느다란 주둥이에서 맑은 물이 콸콸 나왔지. 갑자기 나도 목이 마르는 거야.

    “야옹. 야아옹.”

    “어머나, 너도 목마르니?”

    아주머니가 놀란 얼굴을 했지만, 눈빛이 따뜻했어.

    “잠시만 기다려 봐.”

    아주머니는 물뿌리개 옆에 삽과 장갑을 가지런히 내려놓았어.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해.

    잠시 후, 파란 꽃무늬가 있는 사기그릇에 물을 담아왔어. 이렇게 예쁜 물은 처음이야.

    “어서 마시렴.”

    내가 얼른 다가가자 아주머니는 흠칫 뒤로 물러섰어. 내 몸이 살짝 스친 치맛단을 털면서.

    정신없이 물을 마셨지. 얼마나 상큼하고 시원한지.

    “목이 많이 말랐구나.”

    아주머니가 말했어. 그리곤 엄지와 검지로 그릇을 집어 남은 물을 마당에 버리며 말했어.

    “미안하지만, 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 털도 날리고….”

    아주머니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어. 혹시라도 내 이름을 불러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도망치듯 산속 헛간으로 되돌아왔어. 꽤 오랫동안 머문 집인데 왠지 낯설어. 곰팡내도 나는 것 같고. 아주머니 얼굴만 자꾸 생각나는 거야.

    그런 후, 며칠이 지났어.

    요즈음은 계속 비가 내려. 오늘은 번개가 치고 하늘이 우르르 쾅쾅 요란해.

    지붕에서 내려다보니 계곡물이 넘칠 것 같아. 집으로 밀어닥치면 큰일이야. 얼른 여길 벗어나야 해. 정신없이 산길을 내려와 보니 아주머니 집 앞이었어.

    어디 숨을 곳이 없나 찾아봤어. 마침 처마 밑에 빈 화분이 있길래 얼른 뛰어들어갔지. 생각보다 아늑해. 때마침 아주머니가 집 안에서 나오며 말했어.

    “꽃들이 비를 너무 많이 맞는데….”

    빨간 우산에서 후드득후드득 빗소리가 났어.

    아주머니는 처마 밑으로 화분을 하나씩 들여놓기 시작했지.

    하늘에서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달리는가 싶더니 불기둥이 번쩍 내리꽂혔어.

    우르릉 우르르 쾅!

    “아이고, 무서워!” “야옹!”

    아주머니와 내가 동시에 소리쳤어. 내 소리를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다가왔어.

    “어머나, 너였구나. 이런, 홀딱 젖었네. 어떡하지?”

    아주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봐. 그러더니 종이상자를 현관에 내놓고 들어오래.

    나는 폴짝 뛰어 상자 안으로 들어갔지. 포근하고 뽀송뽀송했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아주머니가 코를 틀어막고 날 쳐다보며 말하는 거야.

    “너 좀 씻어야겠어.”

    나는 몸에 물이 닿는 걸 아주 싫어해. 온몸이 비에 젖었는데 또 씻는다니. 기가 막혀.

    아주머니가 나를 목욕탕으로 데려갔어. 타일 바닥이 물 한 방울 없이 반짝반짝 빛이 났어.

    샤워기를 틀자 햇살 같은 물줄기가 나왔어. 물이 내 몸에 닿자 간지럽기도 하고 아무튼 불편하고 싫었어. 하지만 꾹 참았지. 너무 참아 몸이 바들바들 떨려.

    그러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몸이 거품으로 온통 뒤덮이고 말았어.

    ‘나는 눈사람이 아니라고요. 고양이에요. 고양이.’

    너무 놀라 이리저리 날뛰었어. 온 목욕탕에 거품이 튀고 난리도 아니었지.

    아주머니가 옷에 튄 거품을 털며 소리쳤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야.

    “샴푸로 씻어야 고약한 냄새가 없어져. 안 그러면 너 밖으로 가야 해.”

    밖에는 아직도 천둥소리에 빗소리가 요란해. 그건 더 끔찍해.

    할 수 없이 나는 눈을 꼭 감고 얌전히 있었어. 돌멩이처럼 말이야.

    휴! 드디어 끝났나 봐. 보들보들한 수건이 내 몸을 감쌌어. 꽃향기도 뿜뿜 나고.

    물기를 닦아내던 아주머니가 소리쳤어.

    “어머! 네 등에 구름이 있어. 하얀 털이 보들보들 한 게 꼭 뭉게구름 같아.”

    나도 깜짝 놀랐어. 내가 구름을 좋아하긴 하지. 헛간 지붕에 누워 늘 쳐다보곤 했으니까.

    “어디 보자. 네 이름 ‘구름이’라 불러야겠다. 마음에 들어? 구름아.”

    아주머니의 달콤한 목소리가 내 마음에 사르르 녹아들었어.

    ‘야호! 드디어 내 이름을 불러줬어!’

    온몸이 찌릿찌릿하고 눈물이 날 지경이야. 구름 위를 팡팡 뛰다 데구루루 구르고 싶은 그런 기분. 온몸에서 저절로 갸르릉갸르릉 노래가 나와. 마음에 딱 드는 멋진 이름이야.

    “구름아, 오늘 같은 날 네가 있어 줘서 참 다행이야. 하늘나라 남편이 널 선물로 보내 줬나봐. 나랑 같이 여기서 살래?”

    아주머니가 천둥을 무척 무서워하나 봐. 내가 지켜줘야겠지? “야옹.”하고 대답했어.

    여기서 산 지 벌써 일주일 지났나 봐. 아직도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마음이 콩콩 뛰어.

    그런데, 요즈음 아주머니가 좀 이상해진 거 같아.

    오늘은 장날이라 아주머니는 장터에 갔다 왔거든.

    대문에 들어서면서 “구름아!” 하길래 달려 나갔지.

    어찌나 반가운지 뒹굴다 못해 배를 드러내고 골골골 노래했어.

    나를 쓰다듬던 아주머니가 “엄마 많이 기다렸어?” 그러는 거야. ‘엄마’라는 말에 눈물이 날 뻔했지 뭐야. 그리고 나를 번쩍 들어올리며 혼잣말을 했어.

    “누군가 날 반겨준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눈에는 이슬방울이 가득 맺혀 있었어.

    그리고 장바구니에서 노란 방석을 꺼내 거실에 내려놓았어. 흰양말이 말하던 그 수면 방석 말이야. 날 방석에 앉히며 말했지.

    “오늘부터는 찬 데서 자지 말고 여기서 자.”

    아주머니는 깔끔한 걸 좋아해. 지저분한 건 못 참거든. 매일 씻고 털고 말리고 아주 바빠. 그래서 나는 마당과 현관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어. 털도 날리고 흙발로 들어오면 안 된대. 그런데 거실에 들어와서 자라니 좀 낯설었어.

    이상해진 거 맞지? 내일 누렁이랑 흰양말을 만나 물어봐야겠어.

    어쨌든 나는 행복해. 혼자 살 때보다. 지금 아주머니 무릎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어.

    “구름아, 오래전 어느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꼭 너를 두고 지은 시 같아.”

    아주머니가 나를 쓰다듬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어. 하늘엔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올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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