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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화책 속에서 성냥팔이 소녀와 꾀 많은 토끼, 달타냥을 만나 웃고 슬퍼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책들은 모두 아버지가 보수동 헌책방에서 사 오신 것이었지요. 이북에 고향을 둔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딸의 ‘동심’을 지키려는 든든한 울타리였습니다.
성장하면서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었습니다만, 어쩌다 대학생들과 이십여 년 세월을 같이 보냈습니다. 제각각 다른 빛깔을 가진 그들 속에도 ‘동심’은 살아 움직였습니다.
주름 꽃 활짝 핀 여고 동창끼리의 단풍길에도, 강가에서 물수제비뜨기를 하는 중년의 돌멩이 속에도, 봉숭아꽃물이 든 할머니의 거친 손가락에도 ‘동심’은 살아 있습니다. 때로는 순수함과 설렘으로 때로는 수줍음과 엉뚱함으로 ‘동심’은 질긴 생명력을 갖고 변화하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동심’은 신이 주신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임이 틀림없습니다.
대학을 퇴임하면서 다양한 ‘동심’을 그림책이나 동화로 표현해 보겠노라 늦깎이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느는 그림 실력과는 달리 동화 쓰기란 결코 녹록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격려해주신 존경하는 김재원 선생님, 함께 공부하는 글나라, 센동의 멋진 문우들, 첫 독자를 자처하고 냉정한 피드백과 더불어 ‘글감 찾기’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수많은 여행길로 이끌어준 남편, 글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자신의 손주 동영상을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동화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코로나 상황인지라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가 못 오시겠거니 했는데, 전화로 ‘당선’이라는 깜짝 선물을 안겨 주셨습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동화작가라는 스타트라인에 세워주신 심사위원님, 경남신문사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어머니,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다정한 남편과 잘 성장해준 두 아들과 사랑스러운 며늘아기, 온 가족과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오늘따라 하늘나라 아버지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동화 부문 당선자 남경희 씨 △1960년생 △부산 출생, 창원 거주 △신라대학교 일어교육과 졸업 △일본 다이쇼대학 일문학박사 △창신대학교 일본어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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