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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불견, 불문, 불언- 김종민(문화체육부 차장)

  • 기사입력 : 2021-01-26 20: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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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구례군에 있는 화엄사는 1500년 전 신라시대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이곳 일주문을 통해 경내에 들어서면 방문객들을 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귀여운 아기동자상이 있다.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있는 친근한 표정의 세 동자상 아래엔 각각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이라 적힌 법구경 구절과 그 의미가 표기돼 있다.

    ▼불견(不見)은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는 뜻이고, 불문(不聞)은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不言)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악담은 돌고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어깨 위에 놓이는 세상살이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어느샌가 마음의 무게도 그만큼 무거워진 걸 느낀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반목이 가슴속에, 머릿속에 다시 똬리를 튼다. 다른 사람의 별거 아닌 허물이 눈엣가시로 느껴지고, 그들의 악의 없는 말들이 이유 없이 미워 보일 때가 많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이기심들이 다시 고개를 들까 걱정이다.

    ▼예전 여행길에 방문했던 화엄사에서 본 ‘불견, 불문, 불언’ 이 세 단어는 인생에 대해 크게 되돌아보게 했던 아주 인상 깊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세상 살아가면서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할 말들이지만 요즈음의 나는 어느샌가 그 의미를 잊어버린 것 같다. 이전엔 곱게, 너그럽게 보이던 많은 것들이 이젠 습기 머금은 창문 너머를 보듯 흐릿하게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고개 들고 있는 이기심들이 행여 다시 자리 잡기 전 내 마음속 ‘불견, 불문, 불언’을 오늘 다시 되새겨본다.

    김종민(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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