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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마디와 껴울림, 그리고 새봄-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 기사입력 : 2021-01-26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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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수요일은 24절기상 제일 마지막인 대한(大寒)이었다. ‘큰 추위’라는 이름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사계절의 끝인 겨울을 매듭짓는 실질적인 연말이자 추위의 끝으로 보았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마디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는 습성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삼각함수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한 주기의 마감을 부여하는 경계조건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다짐을 하게 만드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마디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어떤 사건의 일단락이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현상을 발생시키는 경계조건의 역할을 한다. 성질이 다른 줄을 팽팽하게 동여매고 마디를 바꿔가며 줄을 떨게 하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소리가 만들어진다. 현악기뿐만 아니라 타악기인 북도 가죽을 틀의 경계에 바짝 당겨 매 고유의 떨림을 발생시킨다. 피리 같은 관악기도 마찬가지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어제와 다른 오늘처럼 불연속의 지점을 점령하는 경계와 마디이다. 경계와 마디가 있어 선택 가능한 다양한 떨림이 하나의 고유 진동으로 수렴하고 울림통을 통해 증폭된다. 물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껴울림(resonance, 공명 혹은 공진)이라고 한다.

    10년 전 서울의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강한 진동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 지진으로 생각할 정도로 흔들림이 길게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헬스클럽의 집단 뜀뛰기가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는 결론이었다. 다소 괴이한 이유가 거대한 건물의 진동 사고에 대한 과학적 가설로 인정받은 이유는 껴울림 현상 때문이다. 건물마다 고유한 내부의 진동 주기가 있는데 (거칠게 표현하자면 건물도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처럼 해석할 수 있다), 작은 떨림이라도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게 되면 울림으로 증폭된다. 테크노마트 수직 방향 고유 진동 주기가 0.34초인데 뜀박질 진동 주기가 우연히 맞아떨어져 껴울림으로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공개 시연을 통해 상황을 재현하였고, 옥상에 건물의 진동을 상쇄시키는 장치를 설치했더니 이전 같은 진동은 관측되지 않았다고 한다.

    작은 떨림이 큰 울림으로 발전하는 껴울림 현상은 케이블에 의해 지지 되는 형식의 다리인 현수교 건설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지난 2000년 영국 런던 템스 강에 건설된 320m 현수교인 밀레니엄 다리는 개통 당일 다리의 양쪽에 사람들 수백 명이 밀려 들어오면서 전후좌우로 최대 20cm 정도 흔들렸다고 한다. 영국 당국은 개통 나흘 만에 다리를 폐쇄했다가 2002년 보수를 거쳐 재개통했다. 190년 전에도 영국 군대가 현수교 위를 행진하다가 껴울림 현상 때문에 다리가 무너진 적이 있었다. 당시 다리를 건너던 군인들이 다리가 흔들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일부러 박자를 맞춰가며 행진하다가 무너졌다고도 한다. 이후로 군대에서는 다리를 건널 때 일부러 엇박자 행군을 하도록 지시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껴울림은 무선통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창시절 라디오를 조립해서 주파수를 맞춰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공중을 퍼져나가는 전자기파의 약한 떨림이 어떻게 라디오 내부 공진기의 특성을 조정하여 껴울림 하게 되는지 잘 알 것이다. 서로 다른 진동수로는 통신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 수요일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정확하게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BC(Before Corona)를 지나 AD(After Disease)로 진입했다. 구시대를 일단락 짓는 마디인 AD 원년을 잘 살아낸 우리는 새로운 봄의 회복을 희망할 자격이 충분하다. 마침 새해 새봄의 시작인 입춘(立春)도 이제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경남의 최대 혁신자원인 한국전기연구원이 기울이는 건양(建陽) 노력들이 지역 내 다른 주체들과의 껴울림을 통해 다경(多慶)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한성태(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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