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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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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할아버지의 레몬나무- 이영인(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 기사입력 : 2021-02-15 2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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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 할아버지는 키도 크시고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셨다. 말기암의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입원하셨지만 유머 있고, 즐거운 분이셨다. 교장선생님이셨다던 조○○ 할아버지는 제자들 이야기도 잘 해주시고 자신의 집 자랑도 많이 하셨는데, 할아버지의 자랑 중에 매일 빠지지 않던 자랑은 집에 레몬나무가 10그루가 넘게 있어서 레몬이 주렁주렁 열린다는 거였다.

    “에이. 할아버지 거짓말하지 마세요. 마산에 무슨 레몬이 열려요.”

    “진짜라니깐 왜 내 말을 못 믿냐. 진짜 레몬이 주렁주렁 열린데도!”

    입원하시고 통증조절이 잘 되어 퇴원하시면서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다음에 올 때는 레몬나무를 한그루 가지고 오마”하고 큰소리를 치셨다. 집에 계시다가 섬망 증세가 심해지셔서 곧 다시 입원을 하게 되신 할아버지는 화분을 하나 들고 오셨는데 볼품없는 검은 플라스틱 화분에 푸른 잎만 있는 비실비실한 식물을 가리키면서 “저거다 저거. 내 레몬나무!”라고 하시는 거였다.

    ‘확실히 거짓말이셨구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할아버지는 아프시니깐이라고 이해해 드리기로 했다. 이 식물은 키도 작고 잎은 넓고 나무도 아닌 것이 참 볼품이 없어 할아버지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레몬나무는 그 방을 지켰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레몬나무에서 하얗고 부슬부슬한 꽃이 피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아주 귀여운 열매가 맺히고 이게 점점 커지더니 레몬형태의 초록색 과일이 열렸다. 2개나! 할아버지가 레몬나무라더니 진짜 레몬이었네. 그리고 할아버지가 자랑하셨던 것처럼 정말 그날부터 레몬 꽃을 피우더니 레몬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그 방의 마스코트가 된 레몬나무는 그 방에 입원하는 환자와 환자보호자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자라 계속 레몬을 주렁주렁 맺으며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 레몬으로 청을 만들어 직원들과 환자들과 레몬차를 만들어 마시면서 조○○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할아버지. 안 믿어드려서 미안해요. 정말 창원에서도 레몬농사가 잘 되네요. 예쁜 레몬나무 감사합니다.

    이영인(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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