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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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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무속인으로 제2의 인생 김성수 밀양 자림원 원장

오갈 데 없는 아이들 돌보던 ‘총각아빠’ 퇴마사로 인생2막
20대 후반부터 신문 배달하며
결손가정 아동 17명과 한솥밥

  • 기사입력 : 2021-02-17 21: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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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자림원 김성수(54)씨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마흔이 넘도록 ‘총각아빠’로 살아왔다. 그리고 무속인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등 굴곡진 인생을 살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신문을 배달하며 결손가정 아이들 17명의 총각아빠로 청춘을 바쳐 온 김씨는 우연히 신의 부름을 받고 박수무당이 됐다. 무속인으로 살면서 퇴마사로도 널리 이름이 알려진 김씨의 남다른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무속인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밀양 자림원 김성수씨.
    무속인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밀양 자림원 김성수씨.

    자신보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든지 돕지 않으면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김씨는 밀양시 하남읍 독거노인 반찬 배달을 하고 신문배달을 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 왔다. 항상 남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온 김씨는 다들 어려운 시기에 자림원 원장, 밀성환경회사 상무이사, 프라임에셋 생명손해보험 법무대리점 소장, 무속인, 퇴마사, 행복한 뷔페 음식업점 대표 등 직업이 무려 6가지나 된다.

    결혼 후에는 신의 부름을 받아 무속인과 퇴마사의 길을 걸으며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만나본다.

    밀양시 하남읍 수산 468-3 66㎡ 조립식 건물인 자림원은 지난 1994년에 밀양시 하남읍 수덕사 주지 성정스님과 김성수(당시 28세)씨가 수덕사에서 조금 떨어진 농협 부지를 임대해 개원했다. 김 원장은 1992년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결손가정 한 아동을 만났다. 스님과 의논한 끝에 절에 데려가 살기로 했고 이를 전해들은 주변에서 아이들을 수덕사로 데려왔다. 하나 둘 모인 아이들이 일곱 명이 됐고 성정스님은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산도 없고 또 어떻게 이들이 살아갈지 걱정이 된 스님은 김씨와 의논해 농협부지를 임대했다. 그곳에서 조립식 가건물을 지어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0명의 아이들이 더 왔고 총각인 김씨는 아빠로 불리기 시작했다.

    새벽 4시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김씨와 아이들의 손놀림은 바쁘다. 이들은 생활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800여부의 경남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농협에 근무하던 김씨의 월급과 신문배달에서 나온 수입으로 많은 식구들이 생계를 유지했다.그래서 자림원은 고아원이 아니다. 이들 스스로가 일궈낸 가정이다.

    당시 생활비도 많이 들었고 아이들 돌보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총각아빠였지만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돼 마음 편히 돌아와 쉴 수 있는 고향집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운영해 오다 지난해 자림원 문을 닫았다. 그의 오랜 봉사활동은 아동청소년 그룹홈 운영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원장은 경남도지사 표창과 보건복지부 장관상까지 수상했다. 또 KBS 휴먼다큐, MBC 방송에도 출연해 남모르게 아이들을 돌보아 왔던 김 원장의 봉사적 삶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김 원장은 사회 봉사활동에도 남다르게 열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신밀양청년회의소 회장(2008년),밀양적십자 연합회 밀송회 부회장(2005년), 시동 1,2,3동 청년회 회장(2001년) 민주평통 자문위원(12기)등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자림원 입구에 작은 간판 하나조차 내 걸지 않았다. 이유는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싫어서다. 그저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김 원장은 “따뜻한 마음이 아이들의 성장에 등대가 돼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도 누군가의 등대가 돼 주었으면 하는 마음뿐 이라”며 자신이 한 일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현재 안동 오구말이 씻김굿 보존회 임평옥 선생의 수제자가 돼 안동 제비원 굿풀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한국전통민속보존회 회장과 (사)경천신명회 경남본부장도 맡아 죽은 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 일에 전국을 다니며 봉사하고 있다.

    2020년 안동에서 가진 제9회 제비원 성주풀이 굿 시연회.
    2020년 안동에서 가진 제9회 제비원 성주풀이 굿 시연회.

    퇴마사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제가 하는 일이 기 치료로 빙의나 원인이 없는 병 또는 신병 등을 치유해 왔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수많은 병들의 사연들도 같이 접하면서 당사자와 같이 울고, 같이 느끼면서 제2의 인생도 큰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빙의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감기처럼 흔한 질병입니다. 빙의에 대한 퇴마는 분명 영적세계가 존재한다”며 “빙의는 내가 잘못해서 걸리는 것도 아니고, 걸리고 싶다고 해서 걸리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원인도 모를 병으로 답답해하는 가족들과 빙의 환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함께 상담을 하며 밝은 삶을 열어주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그는 전혀 무속인 같지 않은 모습으로 손님들을 대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법당은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법당 분위기도 여느 법당과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손님들과 차를 마시면서 편안하게 상담하는 모습은 마치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를 연상시킨다.

    그는 우리의 전통신앙인 무속의 잘못된 오해를 불식시키고 무속신앙에 대한 역사와 조상들의 삶에서 차지한 비중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앞으로 무속신앙을 전문으로 하는 신문을 발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씨가 처음 무속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자림원을 정신없이 꾸려가고 있는 중에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속에 하루하루 견뎌 가던 중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신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설명한다.

    자림원 전경.
    자림원 전경.

    그때 당시 알수 없는 기호와 문자로써 영감으로 부적을 그리게 됐는데 평생 한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 김씨로서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림 부적 천부도는 규칙적으로 정돈된 어떤 기호로 만다라를 연상케 한다. 그가 그리는 부적은 전문미술인들이 봐도 단 한번도 배워보지 않은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그의 부적은 20호~30호 정도의 크기로 일정한 규칙으로 좌우 대칭이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다. 김 원장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재앙을 막고 각 가정마다 무병장수와 평화를 축원하고 있다.

    또 안동 오구말이 씻김굿 보존회와 함께 매년 안동 굿 축제도 주관 참여한 결과 지난해에는 경기방송국의 안동 제비원 굿풀이방송에도 출연했다. 진오기굿은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보내는 전통 굿으로 김씨는 이 굿을 보전하고 전승하는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무당은 하늘이 허락해 점지하는 천직이라 말한다. 무당으로서의 삶은 그리 만만치 않다. 옳은 신명을 신당에 좌정시켰다하더라도 자신을 맑게 해 중간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밝게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수련없이 그 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밀양시 교동에 천명궁이라는 신당을 차려 세상일에 상처받은 이들과 상담을 하고 빙의치료를 위해 전국을 누비는 그의 일상은 항상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든다. 여느 점집의 무속인들처럼 신당에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여섯가지 직업을 가진 그의 바쁜 일상 중 틈틈이 만다라 같은 부적을 그리고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고통을 쓰다듬어 주고 있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밀양아리랑대축제 행사에서 우리민족의 전통신앙인 굿의 전통성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공연을 펼쳐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 고비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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