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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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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예보- 임솔아

  • 기사입력 : 2021-02-18 0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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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그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 시인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피아노 건반보다 많은 날씨의 감정들, 상황들. 저마다 내 안에 너무 많은 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지구상에 단 하루도 똑같은 날씨는 없고, 사랑이 그렇고 삶도 그렇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날씨를 예보하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은 적중하거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도 같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관심과 선의를 차려입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충고하며 기꺼이 경고까지 한다. 다름 아닌 자신의 걱정과 불안, 집착에서 나오는 괴괴한 날씨와 같은 것들이다.

    나는 나를 오해하고 착각한다. 두둔하고 변명하며 끝까지 선의였다고 고집할지도 모른다. 감금된 나는 우울하다. 창을 활짝 열고 밀어낼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외쳐보라. 오늘 날씨 좋다!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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