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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마산 ‘원동무역’과 남저 이우식 기념관 건립- 김복근(경남문협 고문·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1-02-23 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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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그 통한의 시대에 조선어사전 편찬과 민족정신의 고취, 원동무역을 경영하면서 경제를 살리고,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낸 남저 이우식(1891~1966) 선생은 잊힌 이름이 됐다.

    일제강점기 마산은 조선침략의 전초기지였다. 일제가 우리 역사와 사회 문화에 끼친 해독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의 자주적인 근대화를 저지했으며, 강점 기간에 조선, 조선인, 조선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온갖 만행을 자행했다.

    이 암울한 시기에 구국운동과 교육, 민족기업을 경영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남저(南樗) 이우식(李祐植). 그는 1908년 교남교육회에 가입하였고, 1909년 항일 비밀 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했으며, 1919년 의령 3·1 운동을 주도한 뒤 상하이(上海)로 망명했다. 1920년 귀국하여 부산에서 안희제와 함께 백산무역주식회사 대주주로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100만엔이 넘는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같은 해 5월 마산에서 원동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23년부터 사장에 취임한 후 1939년까지 20년 가까이 이 회사를 경영했다. 원동무역은 백산무역과 유사한 성격의 민족기업이었다. 장기 불황이었지만, 안정적 경영을 통해 민족기업으로서의 위상을 지켰으며, 경남은행 두취를 역임했다. 이우식은 항일운동을 주도한 민족주의자였다. 소작인을 위한 구휼활동에도 앞장섰고, 우리말과 글을 살리기 위해 조선어사전편찬회장과 언론창달을 위해 중외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이극로의 학비를 지원하였고, 마산에 배달유치원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양사원을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도 크게 기여한 문화 사업가였다.

    남성동 91-1에는 3층 건물의 원동무역과 중성동 136에는 이우식이 살던 고딕 양식의 2층 목조 기와집이 있다. 그러나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설픈 반일 감정으로 친일파를 매도하기 보다는 항일운동을 한 선열들에 대한 기억과 발자취를 살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일제 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저항운동을 했던 분들이 일제의 고문과 회유로 친일(親日)을 하거나 부왜(附倭)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훼절하였지만, 이우식은 끝까지 지조를 지킨 독립 운동가였다.

    부산에서는 백산 안희제를 기리는 백산기념관을 건립하여 민족정신 도량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독립 운동가 남저 이우식은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그는 왜경의 눈을 피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며 자신의 행적을 숨겼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원동무역과 이우식의 옛집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1928년에 준공되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할 원동무역 청사를 노래방과 식당으로 두는 것은 면목없는 일이다. 원동무역 청사와 이우식이 살던 집을 남저 이우식 기념관으로 복원, 극일 교육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선생의 삶과 사유방식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김복근(경남문협 고문·시조시인)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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