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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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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성지 경남서 ‘쿠데타 항거’ 미얀마에 힘을 주세요”

김해 미얀마 이주노동자들 호소
“쿠데타 소식에 일도 제대로 못해… 고국서 힘 못 보태 미안한 마음”

  • 기사입력 : 2021-02-23 2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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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1일 아침. 네옴(30·김해 거주·미얀마 양곤 출신)씨는 눈을 뜰 때까지만 해도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리라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하면서 휴대폰을 손에 쥐기 전까지는. ★관련기사 10면

    매일 아침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것은 네옴씨의 오랜 습관이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이용하는 만큼 미얀마에 있는 지인들과 연결되는 가장 쉬운 소통 창구이기 때문이다.

    이날도 네옴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고향 소식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이날은 가족, 친구의 소소한 일상 대신 ‘미얀마 쿠데타’ 소식이 모든 페이스북 소식란을 뒤덮고 있었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지만, 네옴씨에게는 ‘미얀마의 봄’은 멀게만 느껴졌다.

    23일 낮 1시께 김해시 진영읍 한 공장의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23일 낮 1시께 김해시 진영읍 한 공장의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 세력이 지난해 치러진 총선 결과에 불복, 지난 1일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 계속된 군부독재에 맞서 53년 만인 2015년 민주주의를 쟁취한 지 불과 6년 만이다. 군부는 이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정부 고위 인사를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네옴씨를 비롯한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은 쿠데타 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지난 22일 미얀마 전역에서 벌어진 ‘22222’ 총파업과 관련해 페이스북 등 각종 SNS에 올라온 사진./네옴 씨/
    지난 22일 미얀마 전역에서 벌어진 ‘22222’ 총파업과 관련해 페이스북 등 각종 SNS에 올라온 사진./네옴 씨/

    23일 김해의 한 공장에서 만난 네옴 씨는 “다들 출근해 일은 하고 있지만, 고국에 대한 걱정에 정신은 다른 곳에 있다”면서 “1962년과 1988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고 우려했다.

    군부 세력은 미얀마 내의 전화, 인터넷 등을 차단했다. 지난 1일까지만 해도 와이파이 사용은 가능했기 때문에 페이스북으로 현지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난 3일부터 미얀마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SNS 대부분 접속이 막히면서 이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꼬꼬쩌(42·김해 거주·미얀마 만달레이 출신)씨는 “사태 초기에는 가족·친구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다행히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매일 거센 시위가 일어나고 (군부의)강제 진압도 있다고 들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날 만난 미얀마 이주 노동자 10명 모두는 미얀마 군부 세력이 쿠데타 이유로 내세우는 ‘부정선거 의혹’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네옴씨는 “미얀마가 민주주의로 가고 있는 과정에 있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합법적인 선거 결과를 놓고 입지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군대가 부정선거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며 “만약 부정선거가 사실이라면 국민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시위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일 낮 1시께 김해시 진영읍 한 공장의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23일 낮 1시께 김해시 진영읍 한 공장의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군부의 무력 탄압과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미얀마인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마웅묘(27·김해 거주·만달레이 출신)씨는 서툰 한국말에도 “우리 미얀마인들은 누구 한 명이 총을 맞으면 전 국민이 함께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칼에 겁먹고 시위를 멈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또박또박 힘줘 말했다.

    지난 1988년 8월 8일 미얀마에서는 군부 독재에 맞서 ‘8888’ 항쟁이 진행됐고, 당시 군부의 강경 대응으로 한 달 만에 수천명이 숨지는 비극이 있었다. 하지만 미얀마인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도 지난 22일 ‘22222’ 총파업을 통해 군사 쿠데타를 규탄하는 등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다시 한 번 표출했다.

    네옴씨는 “1988년에는 군부가 미얀마 언론미디어를 모두 차단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꾸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시대가, 세계가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에 우리의 소식을 전하고 모든 사람이 연대할 수 있다. 1988년과 똑같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3일 낮 1시께 김해시 진영읍 한 공장에서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현지에 보낼 응원 메세지를 작성하고 있다.
    23일 낮 1시께 김해시 진영읍 한 공장에서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현지에 보낼 응원 메세지를 작성하고 있다.

    도내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은 고국과 민주주의의 명운이 걸린 지금, 현지에서 힘을 보태지 못하는 상황이라 미안한 마음이 크다.

    네옴씨는 “해외에서 국민들을 도울 수 있도록 돈을 더 벌고, 세계적으로 미얀마 상황을 알리는 등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다. 미얀마에서는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에 힘써주길 바란다. 함께하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얀마 문제인 만큼 내부에서 해결되면 제일 좋겠지만, 미얀마 국민의 힘 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적으로 힘이 모이고 뜻이 모인다면 미얀마 군부의 거짓을 밝히고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경남은 한국 민주화의 성지라고 들었다. 경남도민들이 힘을 보태준다면 너무나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망했다.

    글·사진= 이한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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