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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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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5) 통영 삼문당 커피컴퍼니

예술가 드나들던 공방, 대 이어 문화 드나드는 공간으로
추용호 소반장 공방 철거 위기 당시
지역 상인들과 단체 ‘통로’ 만들어

  • 기사입력 : 2021-03-14 2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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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 된 아버지의 표구 공방에서 아들은 커피를 볶기 시작했다. 싸한 종이 내음 대신 커피향과 음악이 공간을 채웠다. 표구사 ‘삼문당’에서 카페 ‘삼문당 커피컴퍼니’로 바뀐 간판에는 표구를 상징하는 액자 이미지가 새겨졌고, 카페 벽면 곳곳에는 고풍스러운 액자와 병풍이 세워졌다. 통영 예인들의 문화 사랑방이자 지역 문화가 만들어지던 공간의 정신을 잇겠다는 마음이다.

    통영시 중앙로에 위치한 삼문당 커피컴퍼니 2층은 기존 표구사 삼문당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통영시 중앙로에 위치한 삼문당 커피컴퍼니 2층은 기존 표구사 삼문당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통영 중앙지구대 옆 오래된 2층 건물, 전면 유리로 된 창에 삼문당(三文堂)이라는 글자가 반긴다. 윤덕현 삼문당 커피컴퍼니 대표는 부친이 50년간 표구사를 운영하던 곳을 지난 2019년 카페로 리모델링했다. 윤 대표는 건물 1층을 로스팅 작업실로, 2층은 카페로 사용한다. 1층은 표구사 운영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 ‘표구사 삼문당’을 기억하는 지역민들의 추억을 소환한다. 2층 카페는 벽과 천장을 최대한 살린 공간에 부친의 표구 작품들로 인테리어를 연출해 옛것과 새것이 어울어진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레트로 감성 짙은 카페 분위기에 커피 맛까지 입소문을 타면서 삼문당 커피컴퍼니는 통영의 이색 명소로 자리 잡았다.

    1층에 위치한 커피 로스팅 작업실 외부.
    1층에 위치한 커피 로스팅 작업실 외부.
    삼문당 커피컴퍼니 2층 내부에서 바라본통영의 풍광.
    삼문당 커피컴퍼니 2층 내부에서 바라본통영의 풍광.

    부친이 50년간 운영하던 표구사
    예인들 사랑방·장인정신 이으려
    2019년 로스터실·카페로 리모델링
    ‘표구사 삼문당’ 흔적 곳곳 남겨
    짙은 레트로 감성·진한 커피 맛에
    통영 이색 명소로 입소문

    윤 대표는 “아버지께서 건강 문제로 표구 일을 더 하기 힘들어지시면서 문을 닫게 됐고, 아버지의 장인 정신을 저만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어 같은 이름으로 이 공간을 만들게 됐다”며 “아주 오래전부터 고향에서 문화가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윤덕현 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윤덕현 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곳은 카페지만 커피만 파는 곳은 아니다.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지는 삼문당 음악제, 인디 공연과 강연이 어울어진 축제인 통영 인디 페스티벌(T-FESTA-TONGYEONG)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연중 열린다. 20평 남짓한 카페 한 켠에는 공연을 위한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고, 카페에서 진행한 공연이나 행사 포스터들이 붙여져 있었다. 물론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카페 내 행사들이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커피와 음악,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 만들기는 진행 중이다.

    윤 대표의 이 같은 활동은 8년 전부터 시작됐다. 타지에서 연극인으로 활동하던 윤 대표는 2014년 고향으로 돌아와 통영 강구안에서 커피숍 ‘커피 로스터리 수다’를 열고, 지역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작은 공연 무대를 만들었다. 당시 통영국제음악제 프린지 공연 참가팀 등 인디신 아티스트들이 공연 후 카페를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공연을 하게 됐고, 그 인연을 계기로 인디신 공연이 카페에서 매달 1회 열리게 됐다. 또 지역의 작은 책방과 기획자들과 함께 격월로 북콘서트, 과학콘서트도 여는 등 이색적인 문화활동이 펼쳐졌다. 그러다 2018년 통영 관람객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강구안 뒷골목 가게 주인들과 대책을 강구하던 끝에 통영 인디 페스티벌도 만들었다. 체계적인 조직도 넉넉한 예산도 없었다. 가게 주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역할을 분담해 페스티벌 준비를 했다. 윤 대표는 평소 인연이 있던 공연팀들을 무료로 섭외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2회 페스티벌에서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예산 일부를 지원 받아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한 페스티벌이었기에 진행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지역민들의 관심은 점점 더 높아졌다. 3회째를 맞은 지난해에는 삼문당 커피컴퍼니 이름으로 정부의 로컬크리에이티브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삼문당 커피컴퍼니에서 개최한 행사 포스터가 벽면에 붙여져 있다.
    삼문당 커피컴퍼니에서 개최한 행사 포스터가 벽면에 붙여져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고 있는 페스티벌은 지난해 10월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마더 인 로’ 영화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 ‘아이 없는 가족’, ‘고기 없는 식탁’, ‘두명의 애인과 삽니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등의 저자와의 대화, 통영춤연구회와 김오키 새턴발라드, 빅베이비드라이버, USD무용단, 하현진, 세이수미, (사)국가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보존회, 김사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공연으로 채워졌다. 행사는 5일간 ‘코로나19로 삼문당 1~3층과 고양이쌤책방, 내성적싸롱호심, 미륵미륵 맥주호스텔 등에서 진행했다.

    윤 대표는 “처음에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시작했지만 회차를 거듭하면서 지역의 무용팀과 전통문화 공연도 선보이게 됐고 반응이 좋았다”며 “이 페스티벌을 통해 상권 활성화는 물론 음악도 즐기고 지역의 문화를 발견하고 발굴하는 일이 재미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삼문당 커피컴퍼니 내부에는 공연을 위한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삼문당 커피컴퍼니 내부에는 공연을 위한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윤 대표는 이 페스티벌이 통영의 특색있는 콘텐츠가 되길 바란다. 보다 체계적인 운영으로 전국의 뮤지션들이 10월이면 꼭 오고 싶은 페스타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다. 이를 위해 올해는 통영 인디 페스티벌(티 페스타 통영) 협동조합을 만드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가장 큰 바람은 페스티벌이 연간 고정 사업을 이어지는 것이다.

    윤 대표는 “지금은 삼문당에서 페스티벌과 관련된 이야기와 사람들이 오가지만 몇 년 뒤에는 또 더 젊은 후배들이 중심이 돼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채워나가면 좋겠다. 이를 통해 통영의 문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삼문당 커피컴퍼니는 페스티벌이나 공연 외에도 지역 문화 지킴이 활동에도 열심히다. 지난 2018년 100년 된 추용호 소반장의 공방 철거 위기 당시 윤 대표를 중심으로 거북선호텔, 봄날의책방 등 30개 지역 소상공인들과 ‘통로’라는 단체를 만들어 목소리를 냈다. 이후에도 강구안 개발사업에 대한 입장 표명 및 남해안 별신굿, 근대문화유산 트레킹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치를 공부하고 알기 위한 강좌도 열고 있다.

    윤 대표에게 어떤 사명감으로 이러한 활동을 하느냐 묻자 “재미가 있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통영이라는 동네가 넘실대면 좋겠고 그것이 즐거워서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통영스럽다는 말이 지금보다 더 세련돼지면 좋겠어요. 그래야 여기에 사는 우리도 재미가 있으니깐요.”

    “많은 사람들이 통영의 지역성과 통영스러운 문화를 이야기하죠. 문화란 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태를 말하는 거라면 통영의 문화가 옛날 문화 예술인이나 흔적이 아닌 지금 우리가 여기서 마시는 커피와 즐기는 페스티벌 같은 것들이 통영의 문화가 아닐까요. 문화는 억지스럽게 만든다고 해서 조화롭게 발전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금 하는 활동들이 성장할 수도 있고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채워지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또 이어져서 전통이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삼문당 커피컴퍼니의 꿈을 물었다. 윤 대표는 “통영의 로컬 스페셜티 브랜드가 되는 커피숍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1인 기업이지만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커피를 만들고, 그 커피를 통해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것이 꿈입니다. 저는 커피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삼문당이 든든해야 다른 활동도 재미있게 할 수 있잖아요.”

    삼문당을 나와 돌아오는 길, 2021년의 통영 문화 한 조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글·사진=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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