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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K할머니-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1-03-16 2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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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은 모질었다. 전쟁이 할퀴고 간 어지러운 나라에 그들은 맨몸으로 던져졌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젊음과 낭만은 남 얘기. 줄줄이 태어나는 자식 건사하기 바빴다. 평생을 설움과 눈물로 살았다. 참으로 억척이었다. 하지만 나이 드니 돌아오는 건 멸시와 구박뿐. 자식 부부 맞벌이에 늙어선 손주까지 떠안았다. 투박하고 드세지만 넉살 좋고 따뜻한 사람, 바로 우리 ‘할머니’다.

    ▼한국 할머니, 이른바 ‘K할머니’의 인기가 심상찮다. 영화 ‘미나리(Minari)’를 통해서다. ‘미나리’는 재미교포 2세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배우 윤여정이 열연한 할머니 역에 울고 웃었다는 관객이 많다. 세계의 반응도 뜨겁다. ‘할머니가 영화 전체를 훔쳤다’, ‘매우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인물’,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그젯밤 ‘할머니’ 윤여정은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K할머니와 손주들의 정서적 교감은 세계 문화에 녹아들었다. 지난 1월 한국인 할머니를 둔 테이 켈러는 미국 최고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받았다. 수상작 ‘호랑이를 잡을 때’엔 ‘halmoni(할머니)’가 등장한다. 지난 3일 공개된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 ‘윈드(wind)’는 한인 2세 장우영이 각본·연출을 맡았다. 윈드의 소재도 한국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이다. 정이삭, 테이 켈러, 장우영. 이들은 모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미나리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 김치나 찌개에 넣어 먹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과 건강한 에너지는 우리의 할머니와 닮았다. “젠장” “옘병” 같은 거친 추임새가 붙지만 그의 언어에는 진심이 담겨 있고, “돈 따먹는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며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치지만 그의 행동에는 사랑이 묻어 있다. 세계가 ‘halmoni’에 열광하는 이유다. 이 땅의 모든 할머니는 진짜로 ‘원더풀’이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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