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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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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바람을 맞다- 천양희

  • 기사입력 : 2021-03-18 0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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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이 일어선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초록빛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영원한 초록빛 생명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숲을 뒤흔드는 바람소리 ‘마왕’곡 같아 오늘은 사람의 말로

    저 나무들을 다 적을 것 같다 내 눈이 먼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가 오려나 거위눈별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먼 듯

    가까운 하늘도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도 바람 속을 넘어왔다 나무에도 간격이

    있고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다 삶은 우리의 수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을 쓴 적이 언제였더라 우리는 왜

    뒤돌아본 뒤에야 반성하는가 바람을 맞고도 눈을 감아버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바람이 일어선다

    ☞ 모든 생명체 안팎에는 떠돌이 바람이 분다.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잔혹하다.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벼랑 끝 죽음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시인은 숲을 뒤흔드는 바람 소리에 위태로운 생명의 다급함을 느낀다.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나무의 자세와 바람 속을 넘으며 숭고한 목숨을 지키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에 대해 생각한다. 초록빛 생명에도 얼음세포가 있음을 발견한다.

    ‘바람(을) 맞다’는 매가 사냥할 때 먹잇감을 놓치면 맞바람을 안고 비행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신에겐 오늘 어떤 시련이 밀어닥치고 있는가? 삶에 대한 의지가 바닥이라면 오오! 바람을 맞으며 수직으로 일어서는 나무의 초록빛 생명을 보라.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처럼 다시 일어설 때이다. 가슴 속 간절한 희망이 솟구친다. 다시 봄, 새로운 시작이다.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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