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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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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살지 못하는 지구 될까봐 잔소리꾼 자처했어요”

/인터뷰/ ‘제로 웨이스트 주부’ 오영실씨
10년 전 아들 태어나던 해 日 대지진 거대 쓰나미에 원전 폭발 목도 충격
“이래선 안되겠다” 행동에 나섰어요

  • 기사입력 : 2021-04-21 21: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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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삶에 가장 큰 변화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제로 웨이스트’를 이야기하니까 친구들이 이제 저를 만날 땐 일부러라도 텀블러를 들고 나오고, 11살 아들도 저를 닮아 자기 친구들에게 플라스틱 빨대 쓰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거요. 빨대가 거북이 콧구멍에 꽂힌다고 친구들에게 못 쓰게 말립니다.”

    ‘지구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20일 오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변한 일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제로 웨이스터’인 주부 오영실(42·창원시 성산구)씨는 “잔소리꾼이 된 것이다”고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제로 웨이스터 주부’ 오영실씨의 남편이 정육점에서 미리 준비한 용기를 이용해 고기를 사고 있다./오영실씨 제공/
    ‘제로 웨이스터 주부’ 오영실씨의 남편이 정육점에서 미리 준비한 용기를 이용해 고기를 사고 있다./오영실씨 제공/

    그가 ‘제로 웨이스트 잔소리꾼’이 된 계기는 11살 아들이 태어난 해인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씨도 여느 사람들처럼 ‘눈 앞에 닥친 삶을 살아가기 급급해’ 지구와 환경을 살리는 일에는 큰 관심을 두고 살지 못했다. 그러다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하며 TV뉴스를 보면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은 일이 터졌다. 그해 3월 11일,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과 곧이어 들이닥친 거대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수소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오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엄청난 공포였다”며 “우리 아이가 제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을 살 수도 있는데 지금처럼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는 분리수거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하기 시작했지만 이내 분리수거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오씨는 “한국은 세계에서 1~2위를 다툴 만큼 분리 배출을 잘하는 나라지만 온전히 재활용되는 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며 “재활용에 적극 동참하더라도 선별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저소득국가로 수출돼 바다에 버려지기 때문에서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다. 제5차(2016~2017년)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활용 가능 자원 분리배출(생활폐기물 재활용율) 비율은 69%로 친환경을 생활화하는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생활쓰레기 연도별 선별 수량 대비 재활용률 현황’을 보면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의 경우 2015년 59%에서 2019년 41%, 비닐의 경우 77%에서 54%로 매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활용 선별장에 반입된 후 절차를 거쳐 재활용 대상으로 선별된 수량은 실제 분리배출 양보다 훨씬 적다는 의미다. 오씨가 분리배출을 잘 하는 것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제로 웨이스트의 취지는 좋지만 실천하기는 어렵고 불편하다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는 생활규칙을 정해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가 보여준 자신의 가방 속에는 반듯하게 접은 장바구니 하나와 민트색 텀블러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오씨는 지난 2017년부터 엄마들로 구성된 마산YMCA ‘등대’ 모임을 통해 다섯가지 생활규칙을 정해 실천하고 있다. 장바구니와 텀블러 사용하기 등 손쉬운 방법은 물론 잠옷은 일주일에 한 번만 세탁하기와 세제 대신 ‘설거지 비누’ 사용하기, 그리고 ‘이메일 삭제하기’ 등이다.

    오씨는 “이메일을 저장하는 데이터 센터는 24시간 꺼지지 않고 돌아가는데 많은 열을 내뿜어 열을 식혀줄 냉각장치도 돌아가 엄청난 전력이 소모된다”며 “환경을 생각해 미련이 남아 지우지 못한 이메일부터 삭제해달라”고 제안했다. 전 세계 이메일 사용자는 약 23억명. 23억명이 이메일 50개만 삭제해도 862만5000GB의 용량을 절약하고, 이를 통해 2억7600만kwh 절약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 혼자서 이렇게 실천한다고 뭐가 바뀌겠나’ 잠깐 좌절하기도 하고 그 자신도 완벽하지는 않은 ‘제로 웨이스터’라는 오씨. 그는 자기와 같은 실천을 하는 등대 모임을 통해서 다시 기운을 낸다고 한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해야 더 큰 힘이 모아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오씨의 바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 줄이기 소비에 나서고 기업도 이에 동참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소비해야 기업도 그 수요에 발맞춰 나가잖아요. 가까이 있는 제로 웨이스트 매장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 우리 모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소비로 기업을 움직여보면 어떨까요?”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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