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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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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서 ‘민주의 횃불’ 또다시…” 부마항쟁 현장 취재원고 공개

고 김택용 부산일보 마산 주재기자
날짜별로 담긴 200자 원고지 100여장
역사적 진실 규명 자료 활용 기대

  • 기사입력 : 2021-04-26 20: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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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년 10월 18일 의거의 도시 마산에서 학생데모가 일어났다. 19년 전 3·15부정선거를 규탄했던 민주의 횃불이 또다시 항도 마산에서 올랐다.’ (부산일보 김택용 기자 18일 마산항쟁 첫 원고)

    부마민주항쟁 당시 마산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한 기자의 원고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 기증되면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해당 원고는 부산일보 마산 주재기자였던 故 김택용 기자가 작성한 것으로 200자 원고지 100여장 분량에 1979년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마산 시위 발발과 전개 상황 등이 날짜와 시간대 별로 담겨 있다.

    故 김택용(부산일보 마산 주재 기자)의 ‘마산학생데모 리포트’ 원고 중 일부.
    故 김택용(부산일보 마산 주재 기자)의 ‘마산학생데모 리포트’ 원고 중 일부.
    故 김택용(부산일보 마산 주재 기자)의 ‘마산학생데모 리포트’ 원고 중 일부.
    故 김택용(부산일보 마산 주재 기자)의 ‘마산학생데모 리포트’ 원고 중 일부.

    해당 원고에는 1979년 10월 18일 오후 6시 51분 남성파출소로 향하던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고, 후퇴한 시위대는 오후 8시 40분 오동다리에 세워진 경찰 트럭 1대를 밀어 하천에 곤두박질 시킨 후 양덕파출소 급습, 산호동 용마맨션 공화당사 난입 등 데모 활동을 펼쳤다는 내용 등이 생생하게 담겼다. 또한 19일 오후 8시부터 시작된 2일째 데모에서 구마산 지역 1500여명의 시민들이 최루탄 속에서 손에 든 돌맹이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고, 북마산 지역 500여명이 산발적으로 데모를 펼친 사실이 세세히 적혀 있다.

    3일째로 접어든 20일자 리포트에는 위수령 발동에 대한 사실 확인 과정과 마산에 도착한 군부대로 인해 시민들이 느낀 공포심이 담겼고, 21일자 리포트에는 경찰이 데모대를 숨긴 집주인 등을 연행한 것과 마산경찰서 앞이 데모 참가 혐의로 붙잡힌 학생들을 보기 위해 몰려 온 가족들로 붐볐다는 내용 등이 기록됐다.

    재단 측은 김택용 기자의 취재 원고는 앞으로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단은 앞으로 故 김택용 기자의 취재 원고를 정리해 부마재단의 사료열람 웹서비스인 부마아카이브(BUMA Archives, www.buma1979.com)에 등록해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고인이 부마민주항쟁의 생생한 장면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계엄령과 위수령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기자 정신 덕분이었다”며 “앞으로도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꾸준히 발굴, 사료 열람 웹 서비스인 ‘부마아카이브’를 통해 일반인에게 제공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앞서 1989년 부마민주항쟁 10주년을 맞아 항쟁 당시 故 유치준씨 사망 등 내용이 기록된 본지(당시 경남매일) 취재진의 취재 내용이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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