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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코로나 여파로 세계여행 138일 만에 돌아온 강주혜씨

“제 여행은 END가 아니라 AND예요”

  • 기사입력 : 2021-05-19 21: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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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간 세계여행을 준비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다. 바로 강주혜(51)씨의 이야기다. 10년 사이 보험 3개를 깼지만 세계여행을 위한 적금만큼은 고이 지켜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2019년 11월, 주혜씨와 남편 김정태(49)씨 그리고 딸 김민주(11)양은 1년여간의 세계여행 시작점이 될 남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 남미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잠잠해질 줄 알았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며 10년간 준비했던 주혜씨의 세계여행은 138일 만에 강제 종료됐다. 그럼에도 주혜씨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세계여행이 끝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내 여행은 END가 아니라 AND다”라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지난 2019년 11월 남미여행 출발 전 공항에서 찍은 강주혜씨 가족사진(왼쪽부터 김정태, 김민주, 강주혜씨)./강주혜씨/
    지난 2019년 11월 남미여행 출발 전 공항에서 찍은 강주혜씨 가족사진(왼쪽부터 김정태, 김민주, 강주혜씨)./강주혜씨/

    ◇10년 동안 세계여행을 준비하게 된 이유= 40살이 됐을 때 문득 20살을 돌아보니 20년 전 그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대학, 좋은 직장 등 그런 것들이 주혜씨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듯 지금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이가 들어 여전히 빛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60살이 되고 70살이 되어 나의 40살을 돌아봤을 때, 그때 세계여행을 못 간 게 내내 아쉬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확신이 선 주혜씨는 남편에게 세계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당시 아이도 없었기에 비교적 자유로웠다. 부부는 이탈리아행 비행기 발권을 완료했다. 그렇게 떠나기만 하면 되는 부부에게 뜻하지 않게 아이라는 선물이 찾아왔다. 초산이자 노산인 나이. 40살 주혜씨는 숙고한 결과 세계여행을 10년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10년 짜리 적금을 들고 때를 기다렸다.

    “아이의 태명은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던 중 생겨 ‘로마’라고 지었죠. 세계여행을 10년 뒤로 못 박은 건 이 아이가 자기 배낭을 스스로 짊어질 수 있을 때 함께 가고 싶었어요.”


    10년간 꼬박꼬박 세계여행 적금
    언어치료사 일 내려놓고
    남편은 직장 그만두고 도배 배워
    딸과 함께 2019년 11월 남미에 첫발
    멕시코·쿠바·브라질 등 매력에 흠뻑
    1년 여정 계획했지만 코로나에 발목

    지난해 7월부터 여행 칼럼 연재
    매달 남미행 비행기 티켓 얻는 기분
    “나의 꿈에 동행해준 가족에 감사
    아르헨티나서 여행 끝났으니
    코로나19 종식되면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파”


    ◇남편과 딸의 동행= “여행은 설렘이죠. 낯선 곳에 가면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그 느낌이 좋아요.”

    주혜씨에게 있어 여행은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컸기에 자연스레 타지로 이끌렸다. 대학생 시절에도 주혜씨는 전국일주, 도보 여행, 국토순례를 다니며 발길 닿는 곳으로 떠났다.

    언어치료사인 그는 현재 가진 것들을 다 내려놓고 긴 여행을 다녀와서도 최소한 가족들을 굶기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주혜씨는 “가자, 갔다 와서 내가 먹여 살릴게”라는 말을 선뜻 건넸고, 그의 여정에 가족들은 흔쾌히 합류했다.

    남편 정태씨는 세계여행을 떠나기 3년 전부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도배 기술을 배우며 현장을 누볐다. 1년 정도 세계 여행을 갔다 왔을 때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딸 민주양도 아직은 이불 속에서 더 자고 싶은 나이인데도 주혜씨를 따라 춥기도 어둡기도 한 긴 여행길을 함께 했다.

    “가족들에게 항상 얘기해요. 나의 꿈에 동행해줘서 고맙다고.”

    지난 2020년 2월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로 이구아수 여행의 브라질 쪽 기점 도시인 포즈두이구아수(Foz do lguazu)에서 찍은 가족사진. /강주혜씨/
    지난 2020년 2월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로 이구아수 여행의 브라질 쪽 기점 도시인 포즈두이구아수(Foz do lguazu)에서 찍은 가족사진. /강주혜씨/

    ◇코로나로 여행 강제 종료, 하지만 기쁘게 생각하기로= 2019년 11월 5일, 이들의 여정이 시작됐다. 세계여행의 첫발을 내딘 대륙은 남미였다. 멕시코에서 시작해 쿠바, 파나마,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 브라질, 칠레를 지나 아르헨티나까지 디뎠다. 남미의 매력에 빠져 계획한 1년 여정의 3분의 1가량을 남미를 둘러보는데 썼다. 그러던 중 2020년 3월 21일, 138일 만에 주혜씨 가족은 여행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는 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컴퓨터를 잘하고 있는데 누가 전기 코드를 확 뽑아버린 기분이었죠. 한 마디로 멘붕이 왔어요.”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이렇게 된 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주혜씨는 말한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월간지에 이번 여행을 소재로 칼럼을 연재 중이다.

    “일정대로 여행을 계속했더라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칼럼을 쓰고 있었겠다는 생각에 아찔하네요. 매달 칼럼을 쓸 때마다 당시의 감정이 떠올라 남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다시 얻는 기분이거든요.”

    남편 정태씨는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이 연결돼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이전에 하던 일을 이어서 할 수 있게 됐다. 1년 동안 쉬었으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딸 민주양에게도 여행에 대한 연습이 됐다.

    여행 간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 민주양에게 향수병이 찾아왔다. 친구도 보고 싶고 학교도 가고 싶어졌다. 그런 시기에 돌아오니 민주양에게 있어 여행은 다시 하고 싶고 그리워지는 존재가 됐다.

    “평소에 여행을 가면 1주일 이상 가기 힘든 현실이잖아요. 근데 이번 여행을 통해 100일 넘게 가는 긴 여행에 대한 연습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에 다시 세계여행을 가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세계여행으로 남모를 전우애도 생겼다. 가족 모두 몸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두툼한 배낭을 앞뒤로 매고 다니며 일정 상 시간이 안 맞으면 하루종일 쫄쫄 굶는 날도 있었다.

    “아이가 이런 얘기를 해요. 예전에는 엄마, 아빠가 얘기하면 듣고만 있었는데, 이제는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여행 이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서 너무 좋아요.”

    가족 이름이 들어간 세계여행 명함.
    가족 이름이 들어간 세계여행 명함.

    ◇나의 여행은 ‘END’가 아닌 ‘AND’다= 주혜씨에게 있어 이번 세계여행은 끝난 게 아니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은 현재 진행 중이고 그 점에 여전히 설레는 그다. 이번 세계여행을 계기로 일년 동안 나가는 여행 대신 ‘일년에 한 두 달 나가는 여행’으로 여행의 형태를 바꾸기로 했다.

    “한 두 달 정도 가면 아이 수업일수도 맞출 수 있더라고요. 일년에 9~10개월 정도는 일하고 한 두 달은 한 도시, 한 나라, 한 대륙을 정해 놓고 여행하면 상당히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이들의 세계여행은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주혜씨는 리뉴얼된 여행의 첫 목적지로 코로나19로 인해 마지막 여행지가 됐던 아르헨티나를 꼽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여행이 끝났으니,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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