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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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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염치(廉恥)- 황원호(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

  • 기사입력 : 2021-05-25 20: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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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엔 오래 전 문 닫은 마산화교소학교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습니다. 1950년대 풍의 건물이라 가끔 낮은 담장 넘어 구경하기도 하는데, 경남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학교라 하더군요. 관심은 건물로 시작했는데 낡은 교사에 붙은 마름모꼴 판재에 한자 한자 적은 교훈에 관심이 더 끌렸습니다.

    禮(예)·意(의)·廉(염)·恥(치).

    ‘예의’는 어릴 적부터 교훈이니, 급훈 따위에서 흔히 보던 거라 별 감흥이 없었죠. 그런데 ‘염치’라니! 대체 뭐지! 저런 교훈을 본 적이 없는데!

    사전에는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참 특이하지만 왠지 숙연해지네!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천 차이나타운특구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서도 같은 글귀의 화교학교를 봤습니다. 뿐인가요? 제주 화교학교에서도 같은 표어를. 그렇다면 전국 모든 화교학교의 공통 교육방침이라는 것인데. 놀라웠습니다.

    크면서 단 한 번도 학교에서나 부모에게서도 딱 짚어서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우연히 팟캐스트를 듣다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예의염치’는 중국 청나라 말기 신해혁명을 이끈 혁명가이자 중화민국의 총통을 지낸 쑨원(孫文)이 시작한 흥중(興中)운동의 핵심정신으로 삼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염치란 단어에서 파생한 “거리낌 없이 자기 이익만 따져서 행동하거나,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뜻하는 ‘얌체’란 단어도 눈에 띕니다. 달리 설명할 필요 없는 단어죠.

    어느 사회에나 국가정신이나 교훈이나 가훈이 있고,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다듬어졌을 것입니다. 화교학교의 염치는 지금도 유효할까 하고 잠깐 생각해보다 결론은 스스로에게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살았지? 염치를 알고 살았나? 얌체라는 손가락질 받아온 건 아니었을까? 하고요.

    오래 전 장난스럽게 내가 정한 가훈은 “인생에 공짜 없다!”였습니다. 붓글씨로 적고, 표구를 하고, 액자를 꾸며서 거실 벽에 걸진 않았지만. 어쩌면 염치란 단어와 조금은 통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뿌듯합니다.

    황원호(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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