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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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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풍문에 시달리다 - 임채주

  • 기사입력 : 2021-06-03 08: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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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울물 흘러가는 고적한 한 모퉁이

    말없는 바위처럼 머리만 쭉 내밀고

    혼곤히 눈을 감은 채 면벽수행 들었다

    덤벙대다 넘어지고 깨어져 앉은 자리

    쇄골에 고인 눈물 지난날 허물일 줄

    퍼내도 넘쳐흐르는 말 가슴 열어 놓았다


    ☞ 유월, 어느덧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나른함을 적셔줄 시원한 뭔가가 필요한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농촌에선 한참 모내기 철이라 이앙기가 물을 채운 논의 노트에 푸른 행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농부가 반듯하게 그어 놓은 행간에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먼 훗날 우리의 사랑이 알곡으로 여물 날을 기원하며, 임채주 시인의 시조 ‘풍문에 시달리다’는 어떤 사연으로 바람결에 흩날리는지 독자와 시인의 감성으로 숨은그림찾기 해보려 합니다.

    ‘개울물 흘러가는 고적한 한 모퉁이’는 아득한 풍문의 배경이자 시발점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고 깊은 사색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묵묵히 걸어온 날들에 대한 반성문처럼 ‘혼곤히 눈을 감은 채 면벽수행 들었다’라고 합니다. 문득 스친 바람이 비밀을 들추어내는 동안 ‘쇄골에 고인 눈물’이 물웅덩이를 만듭니다. ‘퍼내도 넘쳐흐르는’ 끝없는 말이 닫힌 가슴을 무한정으로 열어 놓았습니다. 심중에 깊이 박인 詩물결에 영혼이 시달리고 있는 것을 ‘풍문에 시달리다’라고 한 까닭에 대한 의문부호를 나뭇잎처럼 띄워 봅니다.

    이토록 깊은 심상에서 길어 올린 여름 초입이, 싱그러움의 사색을 넘어선 무한정 즐거움의 길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임성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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