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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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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보호자-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부이사장)

  • 기사입력 : 2021-06-07 2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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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기가 망종이 지났다. 초동면 들판의 보리는 베어졌고, 북면 들녘의 모내기도 끝이 났다. 책상 위 달력으로만 접하던 시간의 흐름이 생동감 있게 시각적으로 펼쳐진다. 낙동강 수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일시에 들판이 무논으로 변했다. 수리 시설의 개선과 발전이 가져온 마술이다. 모심기를 위해 물을 담은 논. 물 논이 음운 탈락 현상으로 무논의 표현이 예스럽다. 어릴 적 어스름 새벽녘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가끔 논에 물을 대러 따라다녔다. 논 한쪽 귀퉁이에 삽으로 물길을 트는 것이, 내 논에 물을 대는 건지 남의 논에 물길을 여는 건지 몰라도, 그때는 그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병원은 3월 초에 1차 백신 접종에 이어, 5월 18일 2차 접종을 했다. 백신 접종의 후유증이 가끔 언론에 보도되고, AZ의 부작용인 혈전의 형성으로 뇌출혈 환자가 발생하는 시국이라 약간의 긴장감도 있었다. 미열이 있으면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라, 고열이 지속되면 해열 진통제를 복용하라는 등의 하나마나한 유의 사항 나열이 지루한 코로나 고개에 오히려 피로감을 배가 한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길이 더욱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병원 텃밭이 제법 풍성하다. 세 고랑 심은 감자가 영글어가고, 초보 농사꾼인지라 고추가 하얀 꽃을 피운 것은 처음 본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폄하한 이가 누군지 몰라도, 노란색 꽃이 복스럽기만 하다. 상추는 이미 수차례 따서 환자 분들과 나누니, 시골 분들이 많아 고향의 정취가 있으신지 좋아 하신다. 호박잎을 수확하면 잎을 쪄서 강된장에 쌈을 싸 먹을 일이 기대된다. 시설과 강 반장님이 진주 대곡면에서 농사를 지으신 분이라, 진두지휘 하에 텃밭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소소하고 행복한 시간들이다. 가정의 달 5월은 이런저런 행사가 있었다. 어린이 날은 우리 아들이 여러 기념일 중에서 좋아하는 날이다. 작년부터 성인의 반열에 올랐으나, 여러 사촌들 중에서도 막내인지라, 아직 이날을 즐기는 것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때문이지 싶다. 몇 해 전 가족 여행에서 어리게만 보이던 아들과 조카님들이 무거운 짐을 나누어 옮기고, 숙소를 척척 찾아내고, 식당을 예약하는 모습에서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 보호자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어버이 날은 홀로 되신 모친과 미망인 누님과 식사를 했다. 지난해 아버지가 귀천하시고 처음 맞는 이날에, 당신 없는 빈자리의 무게감과 짙은 여운이 함께했다. 어떤 사람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 보호자의 사전적 의미이다. 병원 배치도에 내 방은 면회실 바로 옆이다. 휴일인 오늘도 면회를 위한 가족들로 북적인다. 부모님을 면회 오신 자식들과 손자 손녀인 집도 있고, 부인을 면회 오신 남편과 그 자식들도 있고, 남편을 면회 오신 부인과 그 가족들도 있고 형상은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유독 타 병원에 비해 면회객이 많다는 것은, 건강한 가정이 많은 것의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나라 가족의 모습이 점차 핵가족화를 넘어 탈가족화로 변형하는 양상이, 보호자의 의미와 모양도 점점 그 시대에 따라 변화해 갈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는 시대적 흐름이다.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의 모습도 우리와 유사하다. 우리나라도 2025년에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1인 가구가 10가구 중 3가구, 즉 30%를 넘어섰고 핵가족의 전형적 형태인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31.7%에 그쳤다. 한 가구 가족의 평균 가구원 수가 2.3명으로, 4인 가구의 형태가 붕괴 중이다. 문명의 발전과 인구의 감소는 사회 현상의 변화 요인이다. 비혼과 만혼, 불임과 독신의 증가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과 극점 사회의 심화로 불과 한 세대 이후인 2050년 경 위도 상 대전광역시 이남에 인구가 몇 명이나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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