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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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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벤치 인사이트를 키우자-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1-06-30 2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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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 인지(meta cognition)라는 말이 있다. 메타는 ‘~을 넘어서’라는 뜻이다. 메타 인지는 자기를 넘어서 생각하는 것, 자기 생각을 생각하는 힘을 말한다.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만 성적은 잘 오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공부하는 방법이 문제일까? 머리가 부족한 걸까? 이런 경우 메타 인지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메타 인지는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를 아는 능력이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모르는 지를 아는 것이다. 메타 인지가 발달한 아이는 공부를 할 때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준비한다. 도형은 잘 하는데 함수를 모른다면 함수에 집중해서 공부한다. 영어 어휘는 많이 아는데 문법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 문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를 때 발생한다.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자율 주행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다. 이런 시대는 공학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판단력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일은 기계가 더 잘한다. 윤리적 판단과 창의적 아이디어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정보는 많아지고, 많아진 정보 속에서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은 절실해진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정보 부족이 아니라 범람이다. 이런 시대는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연결하고, 가공하고, 필요한 곳에 전달하거나 사용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이런 능력을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정답은 메타 인지에 있다. 가끔 화를 내면서도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발견한다. 모르고 있으면서도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이 무지(無知)의 지(知)다. 메타 인지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힘이다. 자기를 볼 수 있다면 세상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독서량은 일 인당 9권 정도라고 한다. 일 년에 9권이나 읽는다고? 통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사실 통계는 문제가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은 소수지만, 그 소수가 수십 권 수백 권을 읽기 때문에 이런 통계가 나온 것이다. 책에 빠진 사람들은 계속 책을 읽는다. 스토리를 읽는 재미도 있고,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왜 이들은 그토록 많이 읽어 대는 것일까?

    다독가들의 특징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읽다 보면 비로소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도 발견한다. 독서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책이 책을 부르고, 지식이 다른 지식을 소환한다. 노자는 ‘끝이 있는 삶으로 끝이 없는 앎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지만, 이런 경고는 독서가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모른다는 것을 안 사람들에게 지식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이 ‘지식 본능’을 가졌다고 말한다. 알고자 하는 본능이다. 인간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은 어떠한지 알지 못하고 태어난다.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나와 세계를 탐험한다. 사람과 세계를 모르면 두렵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된 것이 탐색과 지식이다. 인류의 초기에는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듣는 이야기만으로도 지식은 충분했다. 이제는 대학 공부를 한 후에도 멈추지 않고, 평생 공부가 강조되고 있다. 이런 많은 공부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초적인 공부는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공부는 무용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감각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용한 지식에 아까운 인생의 시간을 소모해버릴 수도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사색하며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구분할 판단력을 훈련할 수 있다. 벤치 인사이트(bench insight)다. 날로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메타 인지와 벤치 인사이트인지도 모른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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