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시가 있는 간이역] 들꽃(이상설 열사) - 김연동

  • 기사입력 : 2021-07-29 08:46:39
  •   

  • 북녘 땅 닫힌 하늘 굵은 바람 부나 보다

    먼 바다 휘어 돌아 긴 시간을 날아가서

    슬픈 강 유해를 뿌린

    그 마음 짚어 섰다


    이 세상 어디엔들 꽃은 피고 진다지만

    햇살이 퍼질 날만 손을 꼽아 기다리던

    그 들꽃 무수히 피어

    그리움을 키웠겠다


    사람들 발길 끊겨 흔적마저 지원진 곳

    소망도 얼어붙은 이 땅 많이 아팠구나

    이제사 유허비 받든

    하늘 뜻이 시리다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00년 전 그 독립정신을 새기고자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문학기행’ 팀은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우수리스크 수이푼 (고려인은 슬픈강이라 부름) 강가에 세워진 이상설 열사의 유허비를 찾았다. 우리가 찾은 8월이 그 지역 우기여서 유허비 허리까지 강물이 차올라 송구스럽다 못해 가슴 언저리가 질척였다. 그해 여름을 다시 추스르게 하는 김연동 시인의 「들꽃」을 읽는다.

    “북녘 땅 닫힌 하늘 굵은 바람 부나 보다” 첫수 초장부터 가슴에 굵은 획을 긋는 이 작품은 셋째 수 종장에 이르러 “이제야 유허비 받든 하늘 뜻이 시리다”로 열사의 곧은 선비정신과 독립투쟁으로 일생을 바친 그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후손의 뉘우침이, 가슴 시린 하늘을 서늘하게 받들고 있다. “소망도 얼어붙은 이 땅 많이 아팠구나”는 열사가 떠나던 날의 스산함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듯하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헤이그 특사 이상설을 배웠지만 실상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열사는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라며 자신의 유해와 유품을 모두 불태워 수이푼 강물에 뿌리라는 서릿발 같은 유언을 남겼다. 늦게나마 열사의 정신을 진정성 있게 짚어낸 작품 「들꽃」. 척박한 땅에서 고난을 겪으며 독립운동을 벌였던 열사는 지금까지도 수이푼 강물을 따라 동으로 흐르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조국을 수호하고 있지 않은가. (시조시인 이남순)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