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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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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폭염을 뚫는 사람들 (1) 창원우체국 이성주 집배원

계단 오르내리며 땀 뚝뚝 ‘극한 배달’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등 돌며
옷 마를 새 없이 연신 땀방울 닦아

  • 기사입력 : 2021-08-03 21: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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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확산 속 일터에서 잠시 마스크를 내릴 여유도 없는 노동자들은 폭염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좀처럼 완화될 기세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폭염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본지는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싣는다.

    3일 오전 9시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창원우체국 앞. 빨간색 박스가 딸린 이륜차 십여대가 왕복 6차선 도로를 채운다. 집배원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모습이다. 사방으로 흩어진 이륜차 행렬 뒤 반팔 셔츠와 흰토시 위로 집배원 조끼를 입은 이성주(55) 창원우체국 집배원이 모습을 드러내며 손가락으로 도로 맞은편 한 곳을 가리킨다.

    “오늘 갈 곳은 저기입니다. 오늘 많이 힘들 텐데….” 이 집배원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5층짜리 아파트가 끝없이 시야에 들어왔다. 17개동 680가구라고 그가 설명했다. ‘상사팀(상남동·사파동)’ 소속 이 집배원은 폭염 속 이 아파트단지와 9개동 800가구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포함해 인근 상가, 기관 등 4000가구 이상을 맡고 있다.

    도내에 폭염 경보가 내린 3일 오전 검게 그을린 이성주 창원우체국 집배원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다./성승건 기자/
    도내에 폭염 경보가 내린 3일 오전 검게 그을린 이성주 창원우체국 집배원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다./성승건 기자/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계단을 이용해 집집마다 뛰어서 돌며 등기우편물 10여개를 처리하기를 30분째, 손놀림과 발걸음이 빠른 집배원을 쫓아다니느라 등에서는 그야말로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마스크는 땀에 들러붙어 숨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수취인이 집에 없을 경우 재방문을 알리는 ‘우편물 도착안내서’를 문에 붙여놓는다. 법원 등기 등 중요한 서신일 경우 내일 또다시 찾아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이자, 처리물량이 늘어나 더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한겨울 추위야 옷을 더 껴입으면 그만인데, 요즘처럼 더울 땐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니 견뎌내는 수밖에요. 마스크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릴 땐 숨 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집배원이 17개동 중 5동의 집배를 마치며 마스크 밖으로 쏟아지는 굵은 땀방울을 흰토시로 닦아냈다. 기자의 손목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켰다. 기온은 벌써 30도를 넘어섰다. 잠시 쉴 법도 하건만 땀범벅이 된 셔츠가 마를 새도 없이 바로 다음 동으로 향하는 이 집배원. “그래도 오늘은 등기가 적어서 좀 나은 편”이란 답이 돌아온다. “하루에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옷이 흠뻑 젖고 마르고 반복해야 일이 끝납니다. 나중에 옷을 벗으면 옷이 녹아내린 것처럼 흐물거리고 소금이 떨어지지요.”

    도영진 기자가 이성주 집배원과 함께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도영진 기자가 이성주 집배원과 함께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창원우체국은 폭염 기간에 대비해 집배원들에게 매일 얼린 생수와 포도당을 지급하고, 여름 토시와 여름 방석 등도 제공하고 있다.

    ‘눈 감고도 배달할 수 있는’ 경력 30년차인 그를 비롯해 집배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폭염도, 그들의 일인 집배도 아니다. ‘택배’다. 코로나19로 2019년 12월 대비 약 10%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고 있는 가운데 우정사업본부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우체국 위탁 택배기사들의 물량 중 일부를 떼내 집배원들에 준 탓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가리킨 빨간색 박스에는 원래 처리해야 할 일반우편물과 등기·소포 외에도 택배 10여개와 고객들이 반품 신청한 물품에 붙일 ‘픽업용’ 스티커가 가득했다. 이날 기자가 본 또 다른 집배원은 이륜차 빨간 박스 뒤에 별도의 박스를 매달아 택배 물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와 달리 물량이 늘어 일을 더 해도 다른 보상이 없는 집배원들이 시간을 아끼려 두세 계단씩을 점프하듯 아파트를 오르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6년(2015~2020년)간 전국에선 114명의 집배원이 과로로 숨졌다.

    상황이 이렇지만 장시간·중노동 등 열악한 조건에 놓인 집배원들의 노동강도가 금세 줄어들 것 같진 않다. 이 집배원은 “집배원 1명이 휴가 등 이유로 빠지면 그 구역을 다른 집배원들이 대신 맡아 ‘겸배’하는데, 기존 자신의 물량도 많은 탓에 업무가 가중되지만 인력 충원은 소식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8년 집배원 5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2%가 지난 1년간 몸이 아파도 출근해 일한 날이 6일 이상 된다고 답했다. 병가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로는 ‘동료에게 피해를 줄까 봐’(59.6%)였다.

    오전 11시 30분. 정오까지 30분이나 남았음에도 기온은 섭씨 31도까지 치솟았고 습도는 70%에 달했다. 창원지역은 지난달 19일부터 20일째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내년이면 만 30년 근속인 이 집배원의 반팔 셔츠가 두 번쯤 젖었다가 말랐을 때쯤 그에게 ‘후배 집배원들에겐 어떤 소식을 배달하고 싶냐’고 물었다. 이제서야 물 한 모금 마시고 이륜차에 몸을 실은 그는 다음 아파트단지로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며 말했다.

    “더 나은 환경이요. 아프면 눈치보지 않고 쉴 수 있고, 다른 직장인들처럼 1시간씩 여유있게 점심을 먹을 여유가 있는 그런 환경이요. 긍지를 갖고 일하는 후배 집배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배달해주고 싶네요.”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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