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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12) 창원 ‘카페 문호’

일상은 나누고 문화는 곱하고 가치는 더하다

  • 기사입력 : 2021-08-11 08: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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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된 업무와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해방구는 필수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쉼표로 삼는 것이 바로 문화와 예술이다. 마음을 살찌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서다. 최근엔 전문 예술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진일보해 직접 문화를 향유하는 추세다.

    문제는 공간이다. 정부에서 나서 생활문화진흥원이 지역의 문화시설을 이용해 활동을 하도록 독려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공연을 즐기고, 작품을 내걸 장소를 마련하기엔 제약이 더 많다. 문화기획자들을 중심으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누구나 쉽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창원에서 문화공간 공유 플랫폼을 제시하는 ‘카페 문호’를 찾았다.

    신문화의향기 사진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신문화의향기 사진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일상을 나누는 카페’를 꿈꾸다=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카페 문호’의 시작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품설계업에 종사하던 심아준(39)씨는 문화공간을 만들겠다며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같은 해 10월 지금 자리에 문을 열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심 대표에게 그 당시 즐겨찾던 카페에서의 기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심 대표는 “제가 대학생인 시절 홍대 카페문화가 막 태동하던 때였거든요. 지하에 ‘어라운드커피테이블’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아티스트 공연을 보고 편하게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제 인생의 뮤즈 같은 곳이죠. 막연하게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다 결심했어요”라고 말했다.

    사파동 주택가의 흔한 빨간 벽돌집 1층, 일주일 전에 새로 페인트칠했다는 노란색 입구가 눈에 띈다. 가게 유리창엔 이 공간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BOOK’, ‘COFFEE’, ‘CULTURE’, ‘COMMUNITY’ 단어를 스티커로 붙여놨다. 나무 소재의 제법 무거운 문을 열면 역시 나무를 활용한 따뜻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대목장’ 장인어른의 도움으로 가구도 목재다. 50평 남짓의 꽤 넓은 공간이지만 처음 꾸릴 때부터 공연과 강연, 대관, 전시 등을 고려했기에 꽉 채우지 않으려 애썼다. 운영하다 보니 물건이 많아져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면서 적절하게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신문화의향기 사진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문화공유 공간 플랫폼= 카페 이름 뜻을 물으니 ‘문호 개방’할 때 문호라고 했다. 사람들이 문화생활, 취미생활을 통해 교류하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해서다. 처음 1년은 카페 영업에 치중했다. ‘레터링 캔커피’ 제작과 케이터링도 했다. 또 이름을 알리려 이곳에서 팟캐스트, 유튜브를 찍기도 했다.

    이듬해 창원시가 문화기획자 양성하기 위해 만든 아카데미 ‘창문’ 입문과정을 이곳에서 열면서 처음 구상했던 공간으로 제대로 쓰이기 시작했다. 심 대표는 이때부터 지역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문화를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과 시스템을 갖추고 싶은 심 대표는 평소에 카페로 운영되는 공간이지만 원하면 비전문가도 클래스를 열 수 있고 전시와 공연도 할 수 있도록 음향시설과 빔 프로젝트, 전시레일을 구비했다. 커피 마시러 온 손님들이 단골이 되면서 원데이클래스를 열거나 대관 문의도 이어졌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독서코칭, 독서모임, 전시, 클래스, 공연 등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올해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원을 받은 생활인문 프로그램 ‘기록을 통해 나 찾기’와 ‘심야책방’을 운영한다. 5월엔 ‘베르노 콰르텟’이 현악 4중주 공연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 밖에도 자기계발, 그림, 악기, 글 쓰기 등 10개가량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심 대표는 “점점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었는데 코로나 악재가 터졌어요. 부득이 프로그램을 취소하거나 온라인 등으로 대체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죠. 아쉽지만 내실을 다진다고 생각하고 재정비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카페에 책을 파는 매대가 마련돼 있고 관련 프로그램도 많다. 심 대표의 아내 박보경씨의 영향이다. 기업 인사팀에서 오래 일한 보경씨는 책을 좋아하고 사내강사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것을 자산으로 독서코칭과 초청강연, 북큐레이팅을 하고 있다. 보경씨는 “카페에서 파는 책은 제가 읽어보고 좋았거나, 읽고 싶은 책들이예요. 큐레이팅을 거쳤으니 믿고 읽어보세요”라고 말했다.

    문화공간으로 대여할 때 심 대표가 지키는 철칙이 있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것은 지양하고 무엇이든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취지만 좋다면 함께 기획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카페 문호’심아준 대표.
    ‘카페 문호’심아준 대표.

    ◇‘마을 사랑방’으로= 카페 손님의 70~80%가 동네주민이다. 오가다 들러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심 대표는 마을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부부의 마음이 통했을까. 카페 곳곳엔 동네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 있다. 입구에 핸드메이드 물건을 대신 팔아주는 코너가 있고 그 옆에 놓인 풍금은 마을주민이 집에 있던 것을 가게에 선물했다. 벽에 걸린 그림은 지역작가의 매듭 작품이고, 테이블 위에 있는 스탠드 역시 이웃이 만든 수유등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심 대표는 의미있는 전시를 무료로 열어줬다. 14살된 가윤이가 평소에 그린 그림을 모아 카페에 내걸었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부모님이 부탁했는데, 친구들도 보러오고 아이가 무척 좋아하더라는 후일담을 전했다.

    카페엔 주민들이 안 읽는 책을 받아 필요한 사람과 서로 교환하는 코너가 있다. 판매도 가능한데, 이땐 1권당 2000원을 받아 수익금은 기부한다. 손이 많이 가고 돈 벌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 역시 마을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싶어서다. 심 대표는 “주민들과의 관계성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 가게는 일요일이면 ‘탁아소’가 돼요. 단골손님이 아이를 맡기고 볼일 보러 가면, 아이들끼리 책 보며 놀기도 해요. 앞으로도 사랑방 같은 곳이 됐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문화공간을 공유하는 ‘카페 문호’.

    ◇‘같이’의 가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심 대표는 ‘협업자’, ‘협력’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평소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심 대표는 최근 ‘고래둥지’ 대표라는 새로운 명함을 한장 만들었다. 카페 문호를 기반으로, 기회를 만들고 가능성을 키우는 비영리 법인이라고 소개했다. 무리생활을 하는 포유류인 ‘고래’가 우리를 상징하고, 비상하기 전 머물러서 배우고 준비하는 ‘둥지’가 되고 싶다는 뜻으로 지역문화 교육과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다.

    심 대표는 “재능이 있는 주민들이 많아요. 재능을 발견해서 말씀드리면 전문가가 아닌데 내가 해도 될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으니 독려하고자 합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배우고 함께할 곳이 필요한데 우리의 공간과 시스템이 그런 분들께 둥지가 되고 싶어요”고 했다. 아직 시작단계지만 고래둥지를 궁금해하거나 동기부여가 된다고 좋아하는 반응도 많단다.

    문화공간 공유에 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늘지만 창원엔 찾아보기 어렵다. 인근 남해나 통영지역은 지자체에서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고 빈집 등 자원의 활용도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심 대표는 불평불만 대신 부지런히 방법을 찾고 함께 의견을 나눌 이들과 공유공간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 심 대표는 “문화는 소수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편히 즐기고 시도하는 거잖아요. 이곳에 문 두드리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카페 한켠에 ‘뭐라도시도’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판이 걸려 있다. 매일 아침에 물 한잔 먹기, 자기 전에 책 읽기와 같이 정말 소소하게 뭐라도 시도해보자는 의미다.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다면 이곳에 발걸음해 보길 권한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잠재력을 원동력으로 메마른 문화감수성이 채워질테니.

    글·사진=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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