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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정한 사과 없는 일본- 권영수(전 마산운수관리상무참사랑봉사회 회장)

  • 기사입력 : 2021-08-11 2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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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우리나라가 35년간 일제의 강압통치에서 해방을 맞은 지 76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일제는 1900년 이전부터 아시아 전역을 침략하려고 대일본제국을 꿈꾸어 왔다. 1909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패전(항복) 이전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을 침략해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 전쟁터로 내보내거나 일을 시키고 성 노리개로 삼아왔다. 이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던 미국, 영국 등 연합군은 1년 전부터 원자탄 투하에 대한 비밀회동을 가졌다고 한다. 일본 어느 도시가 가장 효과적일까 하는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처음엔 도쿄 지역 일본 왕궁에 투하하려고 했으나 연합군의 폭격으로 주요 군사 시설 등이 많이 파손된 상태라 다른 곳으로 하기로 했다.

    일본의 옛 수도였던 인구 100만의 교토(京都)를 기준으로 투하하기로 삼았지만 무산됐다. 그다음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결정된 것이다. 8 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했고 그 다음 두 번째인 9일은 나카사키에 투하했다. 일본은 쉽게 항복을 하지 않자 미군(연합군)은 이번엔 폭격기에 원자탄이 없는 데도 일본왕궁(日本王宮)을 폭파하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연합군의 전술에 속아 넘어간 일본천황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는지 1945년 8월 15일 정오 12시 히로히토 일왕 (日王)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했다. 소위 일본이 주장하는 대동아(大東亞) 전쟁 종결에 관한 항복 조서문이었다. 당시 히로히토는 일본 왕실이 대대로 간직해온 3종의 신기 (神器:조상이 전해준 칼과 굽은 옥과 거울)를 폭격에서 보호할 방법만 찾느라고 골몰했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3종 신기 보호 타령으로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9일 나카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7일 이상 날짜를 소비했다고 한다. 부상당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었는데 한국인을 포함해 일본인 등 33만명이 조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중국 관동지역에 731부대를 창설해 조선인 7명을 포함해 세계 여러 사람을 끌고 와 마루타(통나무)를 만들어 생체실험을 한 후 잔인하게 죽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세계 지식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성 노리개와 생체실험 등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하고 반성할 것을 촉구했다. 몇 년 전 일본의 모 언론사가 역대 총리 11명에게 한국 정부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중 5명은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십여 개의 나라를 침략하여 수많은 사람을 대량 학살했지만 여태 한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권영수(전 마산운수관리상무참사랑봉사회 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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