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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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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감자 먹는 사람들- 손음(시인)

  • 기사입력 : 2021-08-12 20: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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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비가 오이 넝쿨을 적시다 간다. 젓가락으로 감자를 꿰어 팍신팍신한 감자를 먹는다. 옛 시절, 바쁘고 가난한 엄마들이 마련하는 간식 중엔 감자가 제일 만만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정짓간(부엌의 경상도 방언)’ 시렁에 감자 한 바구니 삶아 매달아 놓으면 누구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감자 바구니는 이내 비워져서 텅텅 저 혼자 빈집에서 외로웠을 것이다.

    식구가 단출했던 우리 집과는 달리 옆집 미옥이네는 여덟 명의 식구가 복작복작 살았다. 여름이 되면 미옥이 엄마는 자주 감자를 삶았다. 검은 가마솥에 새알같이 뽀얀 감자를 넘치게 삶는 날에는 나도 미옥이네 집을 기웃거렸다. 미옥이 엄마의 감자는 늘 장삿일로 바빠 허겁지겁 쪄내는 내 엄마의 감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미옥이 엄마는 감자알이 얼추 익기 시작하면 솥의 물을 비워내고 재빨리 소금을 뿌렸다. 어느 정도 노릇해지기를 지켜보다가 나무 주걱으로 감자를 살살 굴리면, 하얀 분 같은 것이 나와서 감자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미옥이와 나는 그 모양을 애 터지게 지켜보다 이내 양푼에다 포슬한 감자를 받아 나와서는 평상에서 밀린 숙제를 하였다. 어른들은 흙 묻은 바지를 장딴지까지 둘둘 걷어붙이고는 감자에 김치를 얹어 먹으며 등골이 휘는 노동을 잠시 쉬어갔고, 우리는 흰 설탕을 콕콕, 찍어 먹다가 진득해진 입가를 혓바닥으로 내돌려가며 서로의 흉을 보느라 난리를 떨었다.

    마당 끝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었고 수챗물에는 분홍 지렁이가 언제나 한가로웠다. 키 큰 해바라기는 담장에 서서 무거운 머리통을 숙인 채 우리의 감자 양푼을 넌지시 힐끔거리는 것 같았다. 여름날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그때 우리를 성장시킨 감자는 지금 냄비 속에 모락모락 익어간다.

    감자를 삶는다. 흐린 불빛 아래 감자를 먹는다. 비가 내리고 누군가의 심장 같은 감자가 따뜻하다. 일손을 놓고 휴식처럼 감자를 먹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젓가락으로 포크로 감자의 심장을 푹푹 찌르는 저녁이다. 어릴 적 친구 미자 같은 만만한 감자, 나는 자주 감자를 먹는다. 그때마다 비가 내렸다. 냄비 속에 새알처럼 담겨진 감자는 순하고 말이 없다. 비는 한 알 한 알 감자의 내부를 파고든다. 내가 조용히 앓고 있던 슬픔이 저 혼자서 감자를 먹는다. 감자는 나를 익히고 내리는 비를 가만히 듣는다. 그때 내가 조금 미안했어 하며 감자를 삶는다. 비는 감자를 익힌다. 노란 냄비가 모락모락 익어간다.

    저것은 감자가 아니다. -‘감자’ 전문

    졸시 ‘감자’에 나오는 “어릴 적 미자 같은 만만한 감자”는 “땅 속의 사과”라 불리며 지금도 만만한 양식이다. 가공되지 않은 원시의 맛의 감자는 우리에게 ‘쉼’을 제공한다. “우리 감자나 삶아 먹을까?”는 “우리 좀 쉬었다 할까?”라는 말과 동일시된 말이다. 이렇듯 ‘감자’는 서로의 노동을 격려하면 더러는 “뭐 어쩔 수 없지” 라는 숙명적 삶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까맣고 거친 손으로 감자를 먹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우리에게는 감자가 있다. 감자를 잃는다면 전부를 잃은 것과 같을 것이다. 문간방 할머니, 영수 아버지 어머니, 오디 삼촌 등 소박했던 기억이 조금씩 지워져 가지만 ‘감자’는 언제나 우리들의 심장을 따뜻하게 데운다.

    손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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