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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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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등굣길 아이들에 빵 나눔 남해 ‘행복 베이커리’ 김쌍식 씨

빵빵한 아침 나누는 ‘빵식이 아재’의 빵빵한 행복

  • 기사입력 : 2021-09-01 2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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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4시 30분. 눈꺼풀을 짓누르는 졸음을 털어내듯 양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몸을 일으킨다. 세수를 하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수마(睡魔)를 깨끗이 씻어낸 뒤 집을 나선다.

    어둑새벽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 5시 30분. 굳게 잠겨있는 가게 문을 연다. 열한 평 남짓 조그마한 점포에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남해 ‘행복 베이커리’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두운 가게 조명을 밝힌 뒤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조리실이다. 꺼져있는 오븐 온도를 200℃에 맞춰 예열을 시작한 뒤에는 전날 도어콘(반죽의 냉동·냉장·발효 등을 조절하는 제과제빵 기계)에 넣어뒀던 반죽을 꺼내 발효실로 옮긴다.

    시계의 분침이 반 바퀴를 돌고 나면 발효실 속의 반죽은 풍선처럼 부푼다. 발효된 반죽을 오븐에 넣고 빵 종류에 따라 알맞은 시간 동안 굽는다. 빵이 식은 뒤 속에 크림 등을 채우고 포장하면 끝.

    날이 제법 밝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아침 7시 30분. 가게 앞에 마련해 둔 작은 선반 위 바구니에 하루 중 가장 먼저 만든 빵을 채워놓는다. 빵 바구니 밑으로 손글씨가 눈에 띈다. 투박하지만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눌러 쓴 흔적이 역력하다.

    초등생 때 급격히 가세 기울며
    어린시절 배고픔·가난과 싸워
    고2 때 친척 빵집 일 거들며 흥미
    스물아홉에 마트 빵집 입점
    20년 가까이 빵집 운영중

    2019년 개인 빵집 차리며
    등굣길 학생들에 빵 나눔 시작
    18년째 복지시설 빵 지원도
    여전히 형편 넉넉지 못하지만
    “잘 먹겠습니다” 한 마디에 보람

    코로나로 가게 운영 힘들어
    돈 빌려 빵 준비하기도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
    딱 70살까지만 빵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행복 나눌게요”

    김쌍식씨가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빵을 가판대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쌍식씨가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빵을 가판대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아침밥 굶지 말고!! 하나씩 먹고 학교 가자. 배고프면 공부도 놀이도 힘들지용’

    남해군에서 ‘행복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빵식이 아재’ 김쌍식(47)씨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5개월째 등굣길 학생들에게 무료로 빵과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형편이 힘들어도 매일 아침 김씨네 가게 앞 선반엔 갓 구운 빵이 채워진다. 곰보빵, 크림빵, 카스텔라…. 종류는 다르지만 한결같은 정성이 담긴 ‘행복의 빵’이라는 점은 똑같다.

    김씨는 1974년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청기와집에서 살 정도로 유복한 가정이었으나, 아버지가 섣불리 보증을 섰다가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어느 순간부터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외딴집에서 살게 됐다.

    배고픔. 김씨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한 단어로 설명했다. 가세가 기울기 이전까지는 동네에 구멍가게도 운영하고 있어 당시로써는 드물게 먹을 것 걱정 없이 지내다가 한순간에 끼니 걱정을 하는 신세가 됐으니, 어린 마음에 느끼는 설움이 더욱 컸을 터다.

    가난과 싸우며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한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 제빵을 처음 접했다. 당시 남해읍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외삼촌이 일을 거들어달라고 해 처음 빵집에 나간 이후 매주 주말마다 일손을 보태던 것이 김씨 적성에 꼭 맞았다. 제빵에 흥미를 느낀 김씨는 공고 실습까지 빵집으로 나갈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개인적인 사정으로 직장생활을 하게 됐으나, 제빵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김씨는 29살이 되던 해, 남해에 두 번째로 생긴 한 마트에서 빵집 코너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리에 덜컥 입점을 하게 됐고, 20년 가까이 빵집을 운영 중이다.

    남해군에서 ‘행복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씨가 매장 정리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남해군에서 ‘행복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씨가 매장 정리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마트를 전전하며 입점업체로 빵집을 운영하던 김씨는 2010년대 초반 갑작스레 찾아온 공황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 2019년 10월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고자 지금의 자리에 개인 빵집을 열었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아침 9시 문을 여는 마트와 달리 개장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된 이후, 김씨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등굣길 무료 빵’이라는 나눔의 행복을 실천했다.

    김씨는 “어린시절 배가 고파도 형편이 되지 않아 굶었던 기억이 늘 가슴 한켠에 응어리로 맺혀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예전에 비해 먹는 걱정은 없이 잘 산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면서 “첫 빵집을 시작할 때부터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나눔은 등굣길 빵 나눔이 처음이 아니다. 마트에 입점해 있던 시절엔 여건상 등굣길 무료 빵은 제공하지 못했지만, 이미 17~18년째 장애인 단체와 경로당 등 사회적 약자 시설에 연간 2000만원 상당의 빵을 지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돕지는 못할지언정 학생·어르신·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만은 굶지 않았으면 하는 김씨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금가루 빵’이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김씨지만, 빵 하나에 웃음 짓는 아이들을 보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진다. 버스를 타고 30분 넘는 거리를 매일 오가느라, 집안 형편 때문에, 늦잠 자느라…. 가지각색의 사연으로 비워지는 빵 바구니 대신 돌아오는 “잘 먹겠습니다” 한 마디가 쌓이고 쌓여 김씨의 가슴은 행복으로 채워진다.

    김씨는 “20년 넘게 장사하면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했을 정도로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바로 옆집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 시대인데, 나를 보면 꼬박꼬박 인사를 하고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십수년 넘게 이어진 김씨의 선행은 지역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최근엔 전국으로 퍼지게 되면서 지난 7월 29일 ‘LG 의인상’을 수상하기까지 이르렀다.

    처음 LG그룹으로부터 소식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이 상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생색내기 위해 시작한 나눔이 아닌 데다 의인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남해군에서 '행복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쌍식씨./성승건 기자/
    남해군에서 '행복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쌍식씨./성승건 기자/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상금 때문에 (의인상을) 받은 이유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들쭉날쭉해 가게 운영이 많이 힘들었지만, (빵이) 없으면 실망할 학생들 얼굴이 눈에 밟혀 지인에게 돈을 빌려 빵과 음료를 내놓기도 했다”면서 “내가 좋아서,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 남들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상과 함께 돈까지 받아 이제 등굣길 빵 나눔은 안 할 수가 없게 됐다”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해주기 위해 받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빵을 구울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가 더 길어져서 경제적으로 부족해지면 또 빌리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평소 김씨는 기부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부 금액이 적다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눈치를 보는데, 기부는 남 눈치를 보면 평생 못할 것 같아요. 일단은 10원짜리 하나라도 시작한다면, 습관이 돼서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소원은 70살까지 빵을 만드는 거에요. 딱, 그때까지만 제가 가진 조그만 재주를 다른 사람들과 행복으로 나누고 싶어요.”

    이한얼 기자 leeh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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