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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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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나랏일은 뒷전이고- 김종원(경남도립미술관장)

  • 기사입력 : 2021-09-07 20: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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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랏일은 모두 뒷전이니, 백성의 근심 어찌 다시 살필 수 있으랴? 세금 훌치기는 이미 낡은 방식이고, 민생을 살펴준다는 것은 단지 빈말이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도 없는 사람들, 누구 있어 지존에게 이 사실 아뢰어 줄까? 이를 슬피 노래하는 강가의 나그네, 눈물 훔치며 깊이 숨는다.’(國計皆餘事 民憂豈復論 誅求稱舊式 救活只空言 無告惟黎首 有誰達至尊 悲歌江漢客 揮涕臥深村) 이 시는 창원 동읍 다호리 출신의 용강 김재정 (龍岡 金載鼎 1762~1838)이 지은 것으로 ‘탄세(歎世)’라는 제목으로 그의 시집에 실려 있다. 문사철(文史哲)을 갖춘 이른바 선비는 세상에 그 지식이 쓰일 기회를 바라지만 이미 인재의 등용은 매관매직이 대신하는 시대이었다. 그렇게 관리가 된 이가 바로 탐관(貪官)이자 오리(汚吏)가 되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짓을 하니,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이미 구시대의 낡은 방법이 된 지 오래다. 백성을 쥐어짜서 그들의 뱃속을 채우는 수법은 어느 시대나 놀라울 정도로 발전 변용된다. 권력자들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백성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정책을 펼친다는 명목을 내세우나, 그 정책의 숨은 내막은 알고 보면, 그들의 당리당략이고 사리사욕이 숨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아예 내어 놓고 그것이 정의이고, 공평이며, 국가의 미래를 위하는 것이라고 두찬만인(杜撰瞞人)하는 지경이기도 하다. 결국 호소할 길도, 호소할 곳도 없고 호소하여도 소용이 없는 결과에 백성만 고통이자 절망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을 힘이 없는 선비, 지식인은 자괴감에 목이 메어 눈물을 훔치며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거나 바람 찬 강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항다반사(恒茶飯事)로 있는 같은 일의 같은 슬픔이다.

    민주(民主)라는 주의(主義)는 왕조 봉건시대에는 민본(民本)이라는 이름으로 통치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원시적 형태가 민본주의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봉건왕조의 구성을 지탱하는 바탕이 민본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이 시대 민주주의는 정권을 획득한 집권자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로 전락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수의 의견에 복종하는 것으로 민주라는 주의를 규정한다면 소수 의견의 소외라는 불평등의 독재가 부각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결정이 소수의 의견을 버리는 것이 아닌 포용에 있다. 그 포용에서 민(民)이 주인이 되는 정의를 이룰 수 있다. 다수가 소수를 존중하고 소수가 다수를 인정하는 그곳에 민주주의의 권력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일찍이 맹자는 이소사대(以小事大;작은 나라의 큰 나라 섬기기)와 이대사소(以大事小; 큰 나라의 작은 나라 섬기기)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강자와 약자의 상호 존중을 통하는 것이 화합이자 번영이며 민주이고 평등임을 강조한 대목이다. 모든 권력은 정의롭게 적용돼야만 한다. 그 적용은 상하좌우에 보편적인 경우에만 정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쥐는 순간 모든 정의는 권력에 의해 재편성되고 전도되는 역사를 우리는 보아 왔다. 집권 세력에 의해 자기들의 불의가 이 시대의 정의로 포장되는, 참담한 사실을 역사에서 무수히 본다. 시인 김재정이 삶을 영위하였던 이백여 년 전의 아픈 현실이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이 시대에서 달라진 것이 있을까? 민주의 시대에서는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책임지며, 개인은 절제된 자유를 통해 국가를 보지 하는 그러한 관계로서 삶의 질을 높인다. 그러함에도 혁명과는 영원히 고별하여야 할 이 시대에 혁명이라는 단어가 어른거리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역(易)에서 말하고 있다. 이미 끝난 것(旣濟)으로 아는 그 사실은 진실로 아직 끝나지 않은 것(未濟)이기에 역사의 순리라고.

    김종원(경남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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