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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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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기자의 판읽기] (5) 창원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무게

학대 인정하고도 선고유예… “처벌 안 한다는 말과 같아”

  • 기사입력 : 2021-10-09 09: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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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법원을 출입하며 여러 판결문을 접하면 이따금씩 주문(판결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에 위와 같은 한 문장을 볼 때가 있습니다.

    선고를 유예한다, 즉 죄가 인정되지만 선고를 미뤄준다는 의미인데요. 이 선고 유예는 원래의 형에 대한 선고 자체를 유예하고, 유예 기간 동안 특별한 사고 없이 지나면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으로 해준다는 점에서 원래의 형에 대한 집행을 유예하는 집행 유예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좀 더 가벼운 처분인 것이지요.

    판사가 선고 유예를 하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요? 바로 죄가 무겁지 않으니 피고인의 참작할 만한 사정을 고려해서 소위 '봐줄 때'입니다.

    도 기자의 다섯 번째 판읽기에서는 1·2심 법원이 모두 벌금형의 선고 유예를 내린 사건을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1심에서 선고 유예가 나온 뒤 피고인과 검사가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는데, 기각되고 1심과 같은 형이 유지됐습니다. 판결문을 중심으로 재판부와 검사의 법리 해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판결을 바라본 지역사회의 반응도 함께 소개합니다.

    50대 보육교사, 아동들 신체에 고무줄 튕겨
    1·2심 모두 벌금 250만원형 선고유예 판결
    귀·목 뒷부분 잡아당긴 행위는 무죄 판단

    재판부 “신체적·정서적 학대행위 인정되나
    아동들에 가한 물리력 정도가 중하지 않아”

    아동보호기관 “선고유예, 엄벌의지 없단 뜻
    학대는 정도의 문제 아닌 그 자체가 엄중”


    ◇1심 "학대행위는 인정되지만…"

    창원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50대 A씨가 이번 판읽기의 주인공입니다. A씨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의 아동학대가중처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아동복지법을 보면 '신체적·정신적 학대행위'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는데, 검사는 A씨의 범죄에서 학대행위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했습니다.

    그럼 A씨의 범죄 사실 부분을 함께 볼까요?(피해아동의 성별은 판결문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A씨는 지난 2019년 6월 자신이 근무하는 어린이집 교실에서 피해아동 B(3)가 자신을 피해 달아나자 뒤따라가 B의 양쪽 팔에 고무줄을 각각 튕기고, 계속 해서 같은 날 자신의 앞에 앉아있던 피해아동 C(3)의 오른쪽 허벅지에 고무줄을 1회 튕겼습니다. 또 같은 날 몇 시간이 지나서 B의 팔에 고무줄을 대고 마치 튕길 것처럼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군요. A씨는 또다른 피해아동인 D(2)의 왼쪽 발등에 고무줄을 1회 튕겼는데요, D가 주저앉자 고무줄로 위협한 후 피해아동의 오른쪽 발등을 향해 고무줄을 1회 튕겼습니다. 이러한 범죄사실은 증인들의 법정진술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판단 결과, 고무줄 사진, 피해아동의 상처부위 사진, CCTV 영상이 증거로 채택된 결과입니다.

    1심 재판부는 죄는 인정하면서도 '봐줬습니다.' 당시 창원지방법원 형사2단독(홍득관 부장판사)은 지난 1월 A씨에게 벌금 250만원형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그 이유 한번 볼까요?

    재판부는 "피해 아동들은 원만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지장이 있어 정상적인 계획대로 조치하기 곤란한 사정이 발생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이 사건 범행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보호·양육 과정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고, 이 사건 범행은 불과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벌어졌을 뿐 지속적·반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피고인이 피해 아동들에게 가한 물리력의 정도가 아주 중하지 않고, 피해 아동들이 중한 상해를 입는 등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A씨의 범행 당일 B의 왼쪽 귀와 목 뒷부분을 잡아당긴 행위도 있었는데, 이건 신체적 학대행위가 아니라고 보고 무죄라 판단했습니다.

    선고 유예를 받은 A씨 측, 항소를 했군요. D가 주저 앉은 이후에는 고무줄을 튕기는 시늉만 했을 뿐 튕긴 고무줄이 D의 오른쪽 발등에 맞지 않았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A씨의 범죄사실이 "훈육 목적 또는 상호 유희 및 학습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서 '신체적·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학대행위에 대한 고의도 없었다"고요. 훈육 목적 또는 상호 유희 및 학습과정이라.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신체적·정서적 학대행위라 판단해 기소한 검찰, 1심 판결을 접하고 가만있지 않았겠죠. 원심판결에서 판사가 사실을 잘못 인정하고 법리 오해도 있다고 항소했습니다. 벌금 250만원의 선고 유예도 너무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말이죠.

    검사는 1심 재판부가 범죄사실 중 무죄로 본 부분이 사실 오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B의 왼쪽 귀와 목 뒷부분을 잡아당긴 게 왜 신체적 학대행위가 아니냐 따져물은 것이지요.


    ◇2심도 "학대행위 인정되지만…"

    항소를 했을 경우 항소심 법원은 항소 주장에 대한 판단을 내놓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심 법원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놓았습니다. 1심 법원이 사실을 잘못 인정한 게 없고, 법리를 잘못 해석한 것도 없다는 이유에서 말입니다.

    2심 법원의 판단을 함께 볼까요?

    창원지방법원 제3-2형사부(재판장 윤성열 부장판사)는 A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최근 1심과 같은 벌금 250만원형의 선고 유예를 유지했습니다.

    재판부의 말 들어보겠습니다.

    "A씨의 1심 판시 범죄사실 기재 각 행위는 모두 '신체적·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피고인에게 '신체적·정서적 학대행위'를 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 따라서 A씨에게 이 부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될 수 있고, 거기에 A씨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잘못은 없다."

    아동학대 행위를 했다는 걸 인정한다는 말이죠.

    그렇지만 "검사가 항소이유로 주장하는 사정들은 원심 양형 과정에 이미 참작된 것으로 보이고, 원심판결 선고 이후로는 양형의 조건이 되는 사항에 별다른 사정변경이 없다.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제반 양형조건들을 종합해 보더라도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서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으므로, 검사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동학대 행위가 인정되지만, 선고 유예를 결정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합리적이라고 본 것이지요.


    ◇지역사회는 "엄벌의지 있나요?"

    이번 판결, 사실 언론매체를 통해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아동복지시설과 관계된 많은 분들이 사건 초기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사법부의 판단 물론 존중해야 합니다. 다만 수사기관을 거쳐 혐의가 인정돼 기소까지 됐기에 '마땅한 처벌'을 받겠거니 생각하셨던 많은 분들, 1심과 2심의 판단에 허탈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A씨의 엄벌을 원했던 분들도 있었고 말고요.

    반인륜적인 아동학대 범죄가 심삼찮게 들려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국민의 여론은 '엄벌해야 한다'였던 것은 틀림없고요.

    물론 A씨의 범죄의 경우 그 정도 선이 아니란 것만큼은 상식적으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선고 유예' 판결은 어쩌면 A씨에게 '거 봐, 내가 한 행위가 그리 중한 건 아니었잖아'라는 인식을 스스로에게 심어주진 않았을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도 기자의 다섯 번째 판읽기, 오늘은 경남지방변호사회 소속 법률 전문가의 해석대신 이 사건을 익히 알고 있는 익명을 요청한 아동보호전문기관 한 종사자의 말로 끝맺습니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최전선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싶어서입니다.

    "저희가 느끼는 선고 유예는 '처벌을 안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엄벌의지가 없단 말이죠. 아동학대, 특히 영유아에 대한 학대는 물리력의 정도가 중하건 중하지 않건 그 자체로 엄중한 일입니다. 사법부는 이 정도 범죄에 대해서 어떤 건은 처벌하고, 어떤 건은 처벌을 유예하는데… 저희는 어떤 판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나요?"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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