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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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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01) 능집부도(能執婦道)

- 부녀자의 도리를 능히 잘 행한다.

  • 기사입력 : 2021-10-19 0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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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크게 학문을 이루고, 인격을 완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을 했지만, 가족 중의 여성들의 역할도 컸다.

    퇴계선생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부친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부친의 얼굴도 모른다. 그러나 훌륭한 모친 춘천박씨(春川朴氏)가 있어 선생이 평생 학문하거나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모친은 33세 때 혼자되었다. 집안 살림을 맡아 바느질과 음식 장만하는 일은 물론 농사일과 누에치는 일을 맡아 해야 했으니,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6남 1녀를 길러 혼사를 치러야 했고 공부를 뒷바라지해야 했다. 가난한 살림에도 학비를 마련하여 공부하도록 했다.

    모친은 글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의리에 밝고 사정을 깨우쳐 알았다. 자녀들에게 “글공부만 일삼지 말고, 행실을 삼가라. 세상에서 과부의 자식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헐뜯는데, 너희들이 백배 노력하지 않으면 이런 비난 면하기 어렵다”라고 간곡히 훈계하였다. 아들 둘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아갔지만, 기뻐하지 않았다. 모친은 선생을 잘 알았으므로, “너의 성격이 다른 사람과 다르니, 벼슬은 현감 정도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의 뜻이 고결하여 세상 사람들이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퇴계가 늘 벼슬에서 물러나려고 한 것은 모친의 영향이 컸다.

    모친 봉양을 위해서 고을원 자리를 원했으나, 간신 김안로(金安老)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생이 37세 때 모친이 별세했는데, 퇴계는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해 평생 한이 되었다.

    조모는 선생이 22세 때 93세로 별세하였다. 후덕하고 정성스럽고 근검하고 상황판단을 잘했다. 조부를 도와 집안을 일으켰다. 특히 아랫사람이나 어린 사람들을 자혜롭게 길렀다.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높았으나 교만하거나 사치하는 습관이 조금도 없었다. 손자들이 문안드리면 반드시 부지런히 공부해서 뜻을 이룰 것을 권하였다.

    첫째 부인 김해 허씨(金海許氏)는 선생과 생년월일이 꼭 같았고, 금슬도 좋았으나 불행하게도 27세 때 사별하였다. 선생은 평생 사모하였고, 부인 사별 후에도 처가에 다니면서 특히 장모에게 잘 했다.

    맏며느리 봉화금씨(奉化琴氏)는 선생을 잘 받들었는데, 저 세상에서도 잘 모시겠다고 묘소 아래에 안장해 달라고 유언을 했다. 오늘날 맏며느리 묘소가 선생 묘소 아래에 있다.

    맏손자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의 배위인 손부 안동 권씨(安東權氏)는 아들을 잃어 후사가 없었다. 선생의 제자들이 큰 손자 뒤를 무후(無後)로 하고, 막내 손자 이영도(李詠道)가 선생의 제사를 받들게 하려고 논의했다. 그러자 권 씨는 “여러분들이 우리 시아버님인 선생에게 배웠으면서, 어찌 끊어진 계통을 잇는다는 의리도 생각지 않으시오? 남편 아우의 둘째 아들로 뒤를 이으면 안 될 것이 있겠소?”라고 하여 이영도의 둘째 아들을 후사로 세워 종가의 가통을 잇게 하였다.

    선생이 집안의 여인들을 잘 배려했지만, 퇴계 선생이 퇴계 선생 되게 하는 데, 여러 대의 집안 여인들도 선생과 뜻이 잘 맞아 자신의 도리를 알맞게 잘 했던 것이다.

    * 能 : 능할 능. * 執 : 잡을 집.

    * 婦 : 아내·며느리 부. * 道 : 길 도.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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