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경남시론] 한국 민주주의의 죽음에 대하여 - 정성기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1-10-24 21:27:39
  •   

  • 이름 없는 평범한 하루다. 그런데 10·26 사태 하루 전날이다. 부마항쟁 국가기념일 행사에 이어 ‘뮤지컬 박정희’ 등 ‘박정희 정신 되살리기’ 행사도 많다. 누가 ‘부마사태’를 상상이나 했으며,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죽음’을 상상이나 했을까. 두 사건 기념행사의 간극만큼이나 이 나라 분열과 갈등이 심하다. 여전히 환상과 무지에 지배되어 있는 인간과 인간 세상이 아닌가.

    ‘부마사태’도 10·26 사태도 불가피했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부산, 마산 사람들이 죽였다’는 소리는 진작부터 양쪽에서 있어 왔지만, 민주공화당과 박정희가 엄중한 민심을 수용하여 이승만이나 전두환처럼 물러났다면 10·26은 피할 수 있었다.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가 감히 대통령 각하를 살해하고, 광주사태 와중에 전두환 세력의 손에 죽는 어리석은 ‘민주혁명 거사’가 아니라 다른 현명한 길을 찾았으면 그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 흉탄에 죽어가는 대통령을 두고 제 혼자 살겠다고 뿔뿔 기어가다가 죽음을 면치 못한 경호실장 차지철이 ‘200만~300만명 학살한 캄보디아 공산당’ 얘기만 하지 않았다면 사정은 달라져 경남대 출신 경호원이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주 시민들이 침묵하지 않고, 그 당시 ‘부마에서 광주로’ 반 유신 투쟁을 벌였더라도 역사의 물결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42년이 지난 오늘날, 케이팝 등 다양한 한류가 믿기 힘든 속도로 전 세계인들의 혼을 빼놓고 있더니, K-로켓 누리호까지 발사되어 한국은 우주 강국 대열에 들었다. 그러나 최근 이 나라 정치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는 부마항쟁의 교훈을 까마득히 잊고 ‘유신 회귀’의 불통으로 세월호 사태, 교과서 국정화 사태 등을 일으켜 ‘이게 나라냐’는 소리가 천지를 덮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수감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기세 좋게 감옥에 가둔 문재인 정부 하의 이 나라는 어떤 꼴인가?

    며칠 전 본지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에서 선생은 ‘화천대유(火天大有)’를 설명하며, “주역에서 제일 좋은 ‘화천대유(火天大有)’를 회사 이름을 붙여놓고서 대규모 사기행각으로 주역의 이름만 더럽히고 나라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서 ‘방본이망(邦本已亡)’의 뜻풀이에서 경의 정신적 지주 남명 조식 선생의 서릿발 같은 ‘단성소(丹城疏)’에서 “나라 일은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고, 하늘의 뜻은 가버렸으며, 민심도 이미 떠났습니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날, 부마항쟁 42주년 기념 역사기록전 행사 초대장에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설진환 회장은 “‘민주성지’에서 항쟁의 껍질만 휘황해 보이고, 민주의 정신과 가치는 사라져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망친 부마민주항쟁진상조사를 정상화한 한 큰 공적이 있다. 하지만 현 정부 창출 과정의 대선에서 벌어진 드루킹 사건, 날치기 입법 독재, 조국 사태, 불법 행정과 탈 원전 사건, 타락과 직무 유기가 점철된 대법원 등 갖가지 ‘살아있는 권력’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진정한 민주·진보’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권 아래서 이 나라 민주주의는 죽어가고 정치는 급격히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6·25 청년 학도병의 목숨 건 자유·호국 정신, 3·15의거와 부마항쟁 정신, 국민적 촛불항쟁 정신도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범죄 적 후진 권력의 유지를 가능하게 해 주는 주 요인은 야권 몇몇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부정·부패하고, 기회주의적인 사이비 ‘보수 정치’다. 이제라도 민심을 직시하고 물러설 것인가, 계속 외면하여 들불 같은 민의의 심판을 받을 것인가, 그 선택만 남았다. 절망 속에 자살이 늘어나고 있는 2030세대 청년층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대로 ‘깨어있는 시민’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희망이다. 부마항쟁도, 10.26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다.

    정성기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