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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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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02) 개가자부(改嫁子婦)

- 며느리를 다시 시집보내다

  • 기사입력 : 2021-10-26 0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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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앞의 글에서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학덕 형성에 도움을 준 어머니와 큰 며느리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퇴계 선생을 이야기하면 꼭 거론되는 여인이 있으니, 바로 둘째 며느리이다.

    퇴계가 인간적인 차원에서 둘째 며느리를 개가시킨 사실이 세상에 널리 전해 온다. 1980년 퇴계학연구원(退溪學硏究院)에서 낸 소설가 정비석(鄭飛石)이 지은 ‘퇴계일화선(退溪逸話選)’이란 책이 있다. 그 책에 ‘퇴계가 둘째 며느리를 개가시켰다’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줄거리는 이러하다. 둘째 아들이 22세로 요절하고 나서 혼자된 며느리가 퇴계 집에 와서 살았다. 퇴계가 한밤중에 공부하다가 산보를 하는데, 며느리 방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며느리가 남편에게 음식과 술을 권하는 말이었다. 퇴계가 진상을 알지 않을 수 없어,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 며느리가 음식상을 차려놓고 허수아비에 옷을 입혀 남편처럼 앉혀놓고 음식이며 술을 다정하게 권하고 있었다.

    방에 돌아온 퇴계는 잠이 오지 않았다. “절개를 지키는 것이 좋지만, 자식도 없는 젊은 저 며느리가 한 평생을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겠는가? 애처로운 저 모습을 내가 매일 어떻게 보겠는가?”라고 고민했다. 얼마 뒤 친정으로 보내어 시집가게 했다.

    언젠가 서울 가다가 저물어 어떤 집에서 자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음식이 입맛에 꼭 들어맞았다. 떠날 때 버선을 한 켤레 선물하기에 신어보니, 꼭 맞았다.

    한참 가다가 뒤돌아보니, 그 집 젊은 아낙네가 담장에 붙어서 떠나는 퇴계를 바라보며 전송을 하고 있었다. 퇴계는 다시 시집가서 잘 사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했다.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퇴계문집(退溪文集)’이나 어떤 책에도, 이 일화의 내용과 관계된 기록이 전혀 없다. 둘째 며느리에 대한 기록만은, ‘도산전서(陶山全書)’에 ‘단계(丹溪)의 유씨(柳氏) 집안의 딸’인 것만 나와 있다.

    퇴계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이채(李寀)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의령(宜寧)의 외가에 가 살았고, 자라서는 외종조부의 봉사손(奉祀孫)이 되어 농장을 관리했다. 15세 때인 1542년에 결혼하였다가 1548년에 요절했다. 묘소가 지금 의령군 의령읍 고망곡(高望谷) 외조부 허찬(許瓚)의 묘소 아래에 있다. 퇴계는 많은 글을 남겼으나, 둘째 아들에 관한 글은, 이상하리 만큼 없다. 둘째 아들에게 주는 편지는 ‘퇴계문집’에 두 아들 공동명의의 편지 한 통 밖에 없다.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퇴계의 제자들이나 후손들의 기록도 없다.

    둘째 아들 부부가 6년 동안 같이 살았던 것만은 알 수 있지만, 둘째 아들 내외에 관한 그 밖의 기록은 전혀 없다. 그러나 퇴계의 둘째 며느리가 개가한 것은 확실하다. 족보에 둘째 아들의 배필로 올라 있지 않고, 집안에 묘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퇴계가 최종적으로 개가를 허락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때 퇴계의 마음 자세가 복잡했겠지만, 깊이 인간적인 측면을 배려한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인 조처라 할 수 있다.

    * 改 : 고칠 개. * 嫁 : 시집갈 가.

    * 子 : 아들 자. * 婦 : 며느리 부.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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