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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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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내 몸에 풀이- 김수환

  • 기사입력 : 2021-11-18 08: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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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크리트 축대에 떨어진 풀씨 하나

    바늘 같은 틈으로 들어온 햇살을

    힘겹게 끌어당겨서 키를 재고 또 잰다


    빗물이 벽을 타며 쓸어 놓은 흙먼지

    시린 발목까지 채 덮지도 못하고

    간신히 끌어안고 선 저 집요한 벼랑


    구멍이 숭숭 뚫린 성긴 그물 같은

    내 생애 어느 때, 그 절벽 어디쯤에

    무성한 풀무더미 하나 시퍼렇게 솟고 있다


    ☞길을 가다 보면 보도블록 틈으로 솟아난 풀꽃들을 누구라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밟힐까, 조마조마하면서 피해 걷던 일들이 생각난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니나 다를까, 높은 곳만 우러르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아서 납작해진 풀포기가 애처롭기까지 했다. 여린 꽃대는 꺾였지만 세상은 천연덕스럽게 저녁이 오고 또 아침을 맞는 것이다.

    풀이든 사람이든 목숨은 한 번뿐인 것. 아프다는 비명조차도 지르지도 않고 왜 그랬느냐고 따지거나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한낱 잡초라는 이름으로 제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민초들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여기에서 또 만난다.

    더위도 추위도 거친 비바람도 맞닥뜨려 본 적 없이 온실에서 대접받는 꽃이 있는가 하면 풍찬노숙으로 인내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피우는 푸나무가 있다. 김수환 시인의 〈내 몸에 풀이〉는 후자의 삶이다. 가슴 깊은 곳에 꼬깃꼬깃 쟁여 놓은 3장 6구 12음보의 품속에서 부대끼고 휘둘리며 살아온 시인의 삶이 엿보인다.

    콘크리트 축대 틈에 보잘것없는 작은 풀씨 하나가 무성한 풀무더미로 성장하기까지 ‘시린 발목까지 채 덮지도 못하고/간신히 끌어안고 선 저 집요한 벼랑’이야말로 시인의 살아가는 힘이다. ‘내 생의 어느 때 그 절벽 어디쯤에’ 스스로 상처를 달래고 일어서느라 발목이 마냥 저리기도 했으리라.

    지금 어려운 시기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끊기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이 시조 한편이 척박한 환경을 딛고 풀 무더기를 피워내는 ‘콘크리트 축대’처럼 희망의 노래로 우리를 위무한다.

    이남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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