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2년 12월 08일 (목)
전체메뉴

[작가칼럼] 넥타이- 박태현(시인)

  • 기사입력 : 2021-11-18 20:35:19
  •   

  • 어느 의사가 넥타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신경외과 레지던트 1년차, 그때는 호출기를 쓰던 때라, 매미처럼 허리에 매달려 계절 없이 울어대는 호출기 소리에 숨 가쁜 일상이 반복되었다. 링거병처럼 매달려서라도 하루에 3시간 연달아 잠자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각 병동이나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번호가 찍히면 그쪽으로 전화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처리하던 때였다. 1001번 호출이 왔다. 제일 먼저 전화를 해야 하는 곳이다. 신경외과는 응급상황에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경우 환자의 생명과 예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경외과 ○○○ 선생님, 응급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정말 응급한 상황 아니면 방송을 하지 않으므로 그는 바로 응급실로 뛰어갔다. “중환자는 어디에 있나요?” “선생님 환자가 아니라, 환자 보호자 때문이에요. 아이들 보기가 안쓰러워 방송했습니다.” 간호사가 말을 하며 쳐다보는 곳을 그 의사도 자연스럽게 쳐다봤다.

    “선생님, 바쁘신데 너무 죄송합니다.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다 선생님이 응급실로 진료 보러 오실 때 잠깐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간호사님께서 호출도 하시고 나중에 방송까지 해 버렸네요. 얘들아, 어서 인사드리렴, 할머니 별나라 가실 때 곁에서 지키고 계셨던 의사 선생님이야”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6~7살쯤 된 듯한 연년생으로 보이는 꼬마 숙녀 둘이 다소곳이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포장지에 쌓인 선물을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던 그 기억이 이야기 몇 마디 하는 동안 의사는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보호자는 두 달 전, 중환자실에서 밤이 사력을 다해 새벽으로 가고 있을 때, 임종을 거두신 할머니 환자의 아들과 손녀들이었다. 지주막하 출혈로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로 왔고, 도착 당시 이미 혼수상태였다. 출혈이 심하여 거의 소생 가능성이 없음을 설명하였으나, 환자 보호자인 아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교수님께 부탁하여 어려운 수술이 진행되었다.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는 어머님이 기적적으로 깨어나시기를 바라며 아들은 매일매일 기도했다. 이를 지켜본 의사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거나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의 경우, 순번을 마지막으로 하여 좀 더 시간을 할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 달째 식물인간으로 지내던 명부(冥府) 같은 어느 날, 심박 수가 늘어지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이 결국 다가왔다. 연락을 받고 아들이 세상을 다 잃은 황망한 표정으로 병실로 뛰어왔을 때, 무심한 심전도는 삐~소리를 내며 잔잔한 바다처럼 수평선을 그리며 할머니를 무심하게 데려갔다. 여태 고인에게 부착되어 있던 의료 기구들, 이제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의료 기구들을 모두 제거하고 사망 진단서를 발급해 주었다. 그리고 아들과 목례를 나누고 의사는 당직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얼마 후 의사가 당직실에서 선물 포장지를 뜯어보니 넥타이였다. 할머니의 수평선이 그려져 있는 넥타이! 오래전 옷장 맨 구석에 걸어둔 그 넥타이를 오늘은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중간 위치로 바꿔놓았다. 그때 그 꼬마 숙녀들도 이젠 어른이 되었겠지만, 유족들이 잘 되기를 소망하며 중년의 의사는 옷장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박태현(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