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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06) 의덕탁저(醫德卓著)

- 의사로서의 덕행이 우뚝이 알려지다.

  • 기사입력 : 2021-11-23 08: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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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바이처’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활동으로 이미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고, 아동용 전기인물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대암(大岩) 이태준(李泰俊) 선생은 지금은 상당히 알려졌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슈바이처에 조금도 못지않은 우리나라가 낳은 거룩한 의사다. 인류애와 봉사정신이 가득한 덕(德)을 갖춘 분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그랬지, 진작 노벨 평화상을 받고도 남을 인물이다. 이 분은 머나먼 이국 몽골에서 아무도 모르게 의술을 베풀어 성병으로 다 죽어가던 몽골 백성들을 완치시켜 주었다. 또 이국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위해서 헌신한 분이다. 거룩한 의사이면서 위대한 독립운동가다.

    대암 이태준 선생은 1883년 함안군(咸安郡)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공부를 하다가 1905년 서울로 올라가 세브란스 의학교를 1911년 졸업하여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로서 지냈다. 마침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권유로 독립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11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1914년 독립을 위한 비밀군관학교 설립을 위해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서 동의의국(同義醫局)을 개설해서 몽고인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던 성병을 치료해 주어, ‘살아 있는 부처’라는 칭송을 듣고, 몽고왕으로부터 최고훈장을 받았다.

    1919년 김규식(金奎植) 선생이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할 때, 여비 전액을 지원했고, 김원봉(金元鳳)의 의열단 활동을 지원하여 새로운 폭탄 제조법을 전수하려고 하였고, 소련 공산당의 지원금을 받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책임도 맡는 등 독립운동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21년에 울란바토르에서 러시아 침략군에 의해서 억울하게 살해되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그의 행적은 완전히 묻혔다.

    1980년에 비로소 우리나라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001년 울란바토르에 이태준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2010년 기념공원 내에 이태준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우리나라 인물로서 외국에 기념관이 건립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외국에는 기념관이 있는데, 정작 그의 조국에는 기념관이 없었다.

    2008년에 그의 고향 함안에서 대암 이태준선생 기념사업회가 비로소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의 기념사업회 김동균(金東均) 이사장이 기념관 건립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준비하여 추진해 나갔다. 마침 2021년에 군수로 취임한 조근제(趙根濟) 군수가 중요 공약사업으로 선정하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침내 지난 11월 16일 역사적인 개관식을 갖게 되었다.

    이 기념관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애국교육, 인류애 교육, 국제교류 교육의 도량이 될 것이고, 또 독립운동역사관으로도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 醫 : 의원 의. * 德 : 큰 덕. * 卓 : 높을 탁. * 著 : 나타날 저.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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