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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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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우정이 필요한 시대-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1-12-08 21: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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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는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라는 독특한 관계가 건국 초기부터 형성되었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귀족과 평민 사이에 일종의 결연제도를 만들었다. 사회경제적으로 힘을 가진 귀족이 위험에 처하기 쉬운 평민들을 보호하게 한 것이다. 이 관계는 철저하게 신의에 바탕을 둔 의무 관계였다.

    파트로누스는 클리엔스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았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고, 사업은 물론 결혼이나 교육, 소송 문제까지 도와주었다. 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명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직접 나서서 변호를 해주며, 궁핍해졌을 때 먹고 살 수 있게 했다. 위급한 상황에는 몸을 숨겨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보호자였다.

    클리엔스도 보호만 받지는 않았다. 파트로누스가 공직에 입후보하면 후원자를 위해 빠짐없이 투표에 임했다. 아침이면 안부를 전하기 위해 보호자의 집을 방문했고, 유사시에는 무기를 들어 목숨을 걸고 파트로누스를 위해 싸웠다. 파트로누스가 해적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몸값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어떻게든 돈을 모아 보호자를 구출했다.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는 로마의 오랜 법인 12표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보호와 피 보호 관계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법률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 유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을 묶고 있는 것은 공동 운명체라는 의식, 요즘 말로 ‘의리’였다.

    실제 로마 사회는 귀족과 평민,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 보호자와 피 보호자의 관계가 복잡하게 엮여있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또 다른 사람의 피 보호자가 될 수 있었다. 시민 전체가 엮이고 엮여 복잡한 다단계 조직처럼 연결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마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호모 폴리티쿠스, 정치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타인과의 연결 정도가 힘의 원천임을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로마의 귀족은 클리엔스를 얼마나 거느리냐가 신분과 위상을 증명하는 잣대로 작용했다.

    로마 귀족의 아침은 찾아오는 클리엔스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전이 모두 소비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들을 방문자를 친절하게 맞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해결을 도와주었다. 귀찮아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의 방문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의 권리이기도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파트로누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말이 문안 인사지 실제로는 회의였다.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 아니 혼자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없다. 함께 해야 해낼 수 있고, 성과도 높다. 로마인들은 누구보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위나 권위에서 오기도 하고, 물리력이나 법에서 오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력에서 온다.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생활은 유리하다.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 커진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가 많고, 그렇기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고무적인 사람이 된다.

    개인의 삶이 강조되는 요즘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로마인의 파트로누스-클리엔스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행복을 위해서 든 사업을 위해서 든 사람이 필요하다.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이 잘되어야 성공하는 사업이다. 힘이 있는 본사가 가맹점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가맹점이 잘 되면 본사도 잘 된다. 순망치한처럼 엮인 관계는 삶의 현장 어디서든 확인된다.

    우정은 사회적 삶을 사는 인간에게 필수적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혼자서는 힘을 갖기 어렵다. 힘은 사회적인 것이다. 혼자 있으면 사자도 하이에나 떼에게 공격 당한다.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정까지 파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상헌 (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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